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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떠올린 세월호 7시간<33한 날에 돌아와요>

2월 27일 헌법재판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이 진행되었고, 2월 28일에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의혹사건 규명을 위한 특검 수사가 종료되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퇴임식은 3월 13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 여부가 결정되기까지 예정된 시간은 2주 남짓이었다.

3월 3일 금요일, 무겁고 어두운 기다림의 시간 중에, 광화문 ‘광장극장블랙텐트(이하 블랙텐트)’에서는 시즌2의 마지막 순서로 낮 3시 4분부터 밤 10시 4분까지 7시간의 퍼포먼스 <33한 날에 돌아와요>가 펼쳐졌다.

#2 차오르다(고지훈)

 

광화문에 떠올린 세월호 7시간

이번 퍼포먼스의 주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중요한 탄핵 사유 중 하나인 ‘세월호 7시간’이다. 연극, 음악, 무용, 미술 등 다양한 장르에서 지극히 개인적이고 실험적인 작업을 하고 있는 비주류 예술인 60여 명은 어둡고 차가운 바다 속에 가라앉은 세월호를 광화문광장에 떠올렸다.

7시간 동안 무대에 오른 팀은 총 33팀. 예술인들은 대규모 자발적 참여를 통해 1팀당 평균 12분 40초씩 ‘진실을 인양하라’는 릴레이 공연 필리버스터를 이어나갔다.

그 시간 블랙텐트는 세월호가 되었고, 초대된 관객들은 304 죽음의 영혼이 되었다.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세월호의 뱃고동 소리, 갑가지 기울어진 배와 침몰, 죽음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 관객들은 그날의 기억을 함께하다 현재로 돌아오지만, 지금 이 시간,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33한 날에 돌아와요>

7시간의 시나리오

 

#1 설렘과 축제(pm.3:04-4:03)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설렘과 축제의 밤

 

#2 배가 기울어진다(pm.4:04-5:03)

쿵! 소리와 함께 배가 돌면서 기울어진다

 

#3 혼돈과 구조의 희망(pm.5:04-6:03)

가만히 있어라! 가만히 있어라!

 

#4 배가 물에 잠긴다(pm.6:04-7:03)

후회와 반성과 공포와 발악의 시간

-핸드폰에 남겨진 모습들

 

#5 배가 가라앉는다(pm.7:04-8:03)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는 어둠의 시간

 

#6 잠수부들의 인양(pm.8:04-9:03)

죽은 몸들이 나온다

 

#7 아직 사람이 있다(pm.9:04-10:04)

아직 9명의 사람이 세월호 안에 남아있다

 

 

마임이스트 유진규와 이정훈이 처음 제안한 <33한 날에 돌아와요>는 제주실험예술제(JIEAF) 예술감독 김백기와 합정, 망원, 홍대 등에서 실험음악을 주로 하는 ‘불가사리(대표 이한주)’ 등이 뜻을 함께해 다양한 예술분야의 아티스트들을 함께 끌어 모았다고 한다.

2017년 3월 4일로 13주째 광화문에서 시국퍼포먼스를 이어온 ‘주류 아닌 예술가들’의 시국퍼포먼스 모임 ‘옳’ 참가 예술인들과 2016년 8월 15일 「서대문독립민주축제」에서 여성독립운동을 기리는 공연 <왜놈대장 보아라! 우리의 자유를>에 참여했던 여러 여성 예술인들도 함께했다.

#3 본능(서승아, 김희정, 통미, 한영애, 이봉교)

 

촛불의 바다를 항해하는 작은 배, 닻을 내리다

지난 1월 7일,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뒤편에 폭 8m, 길이 18m, 높이 5.5m의 천막 텐트가 세워졌다. 블랙리스트에 항거하는 ‘광장극장블랙텐트’였다. 연극인들과 문화예술인, 해고노동자, 시민 70여 명이 힘을 합쳐 설치한 블랙텐트는 시민과 함께하는 임시 공공극장이었다. 이들은 빼앗긴 극장을 광장에 다시 세워, 부조리한 현실 속에 짓밟힌 연극의 공공성, 극장의 공공성, 예술의 공공성을 다시 배우고, 억압받는 자들, 약한 자들의 목소리를 촛불의 바다에 새기고자 했다.

1월 10일 문을 연 블랙텐트는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다룬 연극 <빨간시>(1월 16~20일, ‘극단 고래’)를 시작으로 검열 언어가 우리에게 어떤 폭력을 가하는지 살펴보는 <검열언어의 정치학>(1월 31일~2월 3일, ‘극단 드림씨어터테제21’), 남도의 씻김굿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수난을 되짚는 <씻금>(2월 6~9일, ‘연희단거리패’), 해고 노동자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시민과 연극인이 함께 만들어 화제를 모았던 연극 <노란봉투>(2월 14~17일, ‘극단 돌파구’) 등 약 두 달 동안 72개 작품을 공연하며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를 다루는 공론장이 되어 왔다. 공연뿐 아니라 축소되고 왜곡된 언론자유의 실상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7년, 그들이 없는 언론(감독 김진혁, 전 EBS PD)> 등 영화도 상영했다.

#5 Mute(나비)

공연은 '모든 시민들에게 개방된다'는 원칙에 따라 모두 무료로 진행되었으며, 문화예술인들 역시 개런티 없이 공연에 참여해 관객들과 호흡했다. 무대, 객석, 조명 등 극장 설비부터 무릎담요, 핫팩 등 운영 물품과 전기 등 소모비용 모두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서 기부와 후원으로 마련되었다. 약 두 달 동안 블랙텐트에서 공연한 예술인은 400여 명, 총 관객 수는 3,373명에 이른다.

대통령 파면 여부가 결정되기 하루 전인 3월 9일, 이곳에서는 광장극장블랙텐트 페스티벌 ‘봄이 온다’의 마지막 공연이 이어졌다.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고 다음 날인 11일 오후 1시, 광화문·종로 일대에서는 광장극장블랙텐트의 마지막 퍼포먼스 <우리가 헌법이다: 헌법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시민들과 함께한 헌법퍼포먼스는 대한민국 헌법 중 9개 조항을 발췌해 행진 중간 중간에 특정한 장소에서 낭독하는 야외 퍼포먼스였다.

#6 검은 바다 속 노란리본(지연, 연술, 은숙)

2017년 3월 18일, 광장극장블랙텐트 천막극장이 해체되었다. 민주주의의 거대한 열망이 출렁인 촛불의 바다를 항해한 작은 배가 71일 간의 여정을 마치고 닻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천막극장의 해체가 광장극장블랙텐트의 해체는 아니다. 이해성 광장극장블랙텐트 극장장(‘극단 고래’ 대표)은 “광장극장블랙텐트 천막극장이 내세웠던 연극의 공공성, 극장의 공공성, 예술의 공공성은 촛불시민이 열어놓은 새로운 시대에 재정립될 국공립극장에서 빛나게 구현될 것”이라며, “오늘 여기에서 천막극장을 해체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더 넓은 광장극장블랙텐트를 다시 세우게 될 것”이라 선언했다.

광장극장블랙텐트는 천막극장 해체 이후를 준비하는 포럼을 개최하고, 광화문 광장에서 이루어진 동료예술가, 노동자, 시민들과의 연대를 기억하고 이어가는 활동도 계속할 예정이다.   

#7 거기 아직 사람이 있다(최강희, 강해진, 이군섭, 유진규)

 

사진: 권영일(도담아카이브)

 

오윤주 기자  koala@s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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