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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시대, 2021년 우리의 길은? 1부S. Economy 신년좌담

2020년 코로나19는 전 세계인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1년을 보내며 우리는 또 새로운 1년을 맞이한다. 《S.Economy》는 팬데믹 위기의 본질을 성찰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 사회의 전환 방향을 고찰하며, 사회적경제의 정책전략을 찾기 위해 신년좌담을 진행했다.

일시 2020년 12월 9일
장소 씨즈 회의실 

사회 이은애(사단법인 씨즈 이사장)
참석 곽은경(GSEF 사무국장)

     이원재(LAB2050 소장)
     정건화(한신대 교수) 

정리·사진 김푸르매(본지 발행인)

 

이은애 이사장(왼쪽)과 정건화 교수

 

이은애

“현재 지구에서는 ‘6번째 대멸종(mass extinction)’이 진행 중이다. 육지에 사는 척추동물 500종 이상이 멸종 직전에 이르렀다.”1)

지난 6월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된 연구결과인데요. 연구팀은 6번째 멸종의 유력한 용의자는 인간이며, 우리의 일상을 뒤흔든 코로나19의 발병도 이 대멸종의 속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경고했습니다.

2020년, POST COVID-19, WITH COVID 등 신조어도 늘었는데요. 지난 1년과 향후 펼쳐질 세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정건화

저는 팬데믹을 ‘검은 백조 사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원래는 과학철학에서 실증주의와 경험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표현인데요. 월스트리트에서 투자분석가로 활동하던 나심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는 2007년 출간한 책 『검은 백조(The Black Swan)』에서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지만 발생하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사건을 ‘검은 백조 사건’이라고 일컬었습니다.

17세기 호주대륙에서 검은 백조가 발견되기 전까지 유럽인들은 백조는 당연히 흰색이라고 생각했어요. 불가능할 것이라 인식하던 상황이 실제 발생한 거죠. 2020년 우리가 경험한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전 세계가 동시에 이렇게 멈출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검은 백조 사건이라고 볼 수 있죠.

검은 백조 사건의 특징은 일어날 확률이 너무 낮으니까 이에 대한 대응을 못 한다, 아니 안 한다는 겁니다. 미래를 기존의 방법으로 준비하고 대응하니까 양상은 다르지만 검은 백조 사건이 또 발생하는 거죠. 이에 대응하려면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해요. 저는 이번 팬데믹이 문명적 전환의 계기가 될 검은 백조 사건이라고 봅니다. 팬데믹 이후의 세상을 조심스럽게 예측해보자면 더는 현상 유지가 어려울 거예요.

어떤 이들은 이번 팬데믹을 ‘검은 백조’가 아니라 그냥 ‘흰 백조’라고 말하기도 할 겁니다. 누구나 기후위기가 만들어낼 파괴적인 재앙을 알고 있었죠.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경제학자 니콜라스 스턴(Nicholas Stern)은 2006년 온난화의 위험성을 경고한 「스턴 보고서(Stern Review on the Economics of Climate Change)」를 발표했는데요. 지금 우리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감염병, 인류와 환경에 미치는 경제적 파장 등을 고려할 때 현상 유지를 하는 데만도 전 세계 GDP의 5~20%가 온난화 비용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선제적으로 GDP의 1~2%를 투자한다면 파괴적인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했죠. 경제적으로도 훨씬 효율적이고요.

스턴은 2016년 한국을 방문했는데요. 당시 보고서 발표 이후에도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서 실망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4년 후 우리는 스턴이 경고한 비용을 치르고 있다고 봐요. 올해 GDP 성장률을 보면 한국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지만, 대체로 전 세계가 마이너스 20~30%를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팬데믹 전과 후를 구분한다고 하지만, 전환을 위한 분명한 결의나 합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이원재 LAB2050 소장

이원재

저도 정 교수님 생각에 동감해요. 문명이 전환된다고 할 때, ‘인간’은 ‘문명을 전환하는 주체’인가, 아니면 ‘문명의 전환을 받아들이는 객체’인가 생각해보았는데요. 대체로 지금까지 주체였던 적은 드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한 기후의 변화라든가 또는 산업혁명 같은 기술의 변화가 나타났을 때 거기에 적응하는 방식이 인류의 대처였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농촌을 떠나 공장이 있는 도시로 몰려왔습니다. 도시에서 정말 비참하게 살아갔죠. 감염병이 돌아 많이 죽기도 하고, 아이들조차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어요. 그런 고통을 100년간 겪은 다음에 기계 문명이 자리 잡았죠.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모델에서 적게 소비하는 모델로 전환하는 것은 교수님 말씀처럼 문명적 전환인데요. 문명적 전환이라는 것은 단순히 생산방식만 바뀌는 게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 국가와 국경의 위상, 문화와 소비 생활 등 모든 게 바뀌는 거잖아요? 자발적으로 바꾸기는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많은 경우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류가 마주한 문제를 연착륙시켜보자며 자발적으로 문명적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일단 뭔가 같이 해보자는 의지’를 더 많은 이들이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무엇을 같이 해야 할까요? 지금 우리는 인류의 안전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를 집중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나는 정 교수님께서 언급하신 스턴 보고서의 경고, 즉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자연자원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에요. 또 하나는 노동의 문제입니다. 사람이 자본에 고용되어 일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왔는데, 그 개념이 바뀔 때가 된 거지요.

이제 이 두 가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겁니다. 아니, 사실은 이미 오고 있었죠. 코로나19가 한 역할은 “이제는 정말 해야 해”라고 강력하게 이야기한 거예요. 전환을 그냥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환의 주체로 나서도록 인류를 깨우친 거죠.

 

이은애

준비 안 된 전환의 시기에 더 자발적이면서 광범위한 참여나 변화를 이끌려면 어떤 정책적인 수단이 필요할까에 대해 뒤에서 더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GSEF(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에서는 웨비나(webinar)를 통해 K-방역으로 대표되는 한국적 상황과는 다른 각국의 양상도 보았을 텐데요. 세계 각국의 동향은 어떤가요?

 

곽은경 GSEF 사무국장

곽은경

우선 이원재 소장님 말씀에 동감하고요. 저는 질병이 인간의 의식변화와 진보를 결정짓는 큰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봐요. 역사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이 창설된 건 전쟁에서 죽은 사람보다 전장에서 입은 상처로 세균이 감염되었는데 치료받지 못해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국제적인 인식이 새롭게 생긴 거죠. 우리가 대비하지 못한 질병과 세균이 역사 발전의 계기, 문명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강조된 것 같지 않지만, 유럽이나 캐나다 퀘벡 등에서는 식량 안전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팬데믹이 불러온 가장 큰 공포가 식량 위기였죠. 실제로 EU에서는 개도국을 중심으로 식량 안전과 식량 위기에 대응하는 전략을 짜고 있고요. 제가 1980년대 유럽의 국제협력기구에서 일할 때 시민사회와 사회적경제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가 식량 안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그 당시의 우려가 예언처럼 들어맞는 것 같아요.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미국과 유럽의 국가에서 엄청난 사람들이 팬데믹의 피해자가 되고 있잖아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농업이 공업화, 현대화, 기업화되면서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통해 자연적으로 생산되던 안전한 먹거리가 개량화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적인 면역력이 굉장히 약해진 생태계가 만들어졌다고 해요. 요즘 가장 큰 화두는 ‘개인이 면역력 있는 생태계로 전환’하는 것, 그리고 ‘개인이 모여있는 공동체와 지역사회가 면역력 있고 회복력 있는 생태계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 아프리카 등 개도국에서 더 큰 피해를 볼 것이란 우려가 있었는데요. 오히려 경제력과 기술력을 다 갖추고 있는 선진국의 피해가 컸습니다. 기술과학의 진보가 생태계 파괴를 막지 못했던 거죠. 이런 상황에서 유기적인 생태계를 회복하기 위해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졌습니다. 기후변화 대응, 경제의 가치사슬 변화, 무엇보다 농산물의 유기적 생산과 유통에서 사회적경제의 역할이 많이 논의되고 있어요.

 

이은애 사단법인 씨즈 이사장

이은애

팬데믹이 인류에게 던진 메시지와 유럽, 북미의 동향까지 들어보았는데요. 그렇다면 팬데믹 반복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지구적’ 해법은 무엇일까요? 그 안에서 사회적경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정건화

문명적 전환이라는 건 정말 넓고 깊고 큰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 시점에서는 200~300년 동안 이어진 자본주의의 변화를 뜻한다고 볼 수 있죠. 환경운동가이자 작가인 나오미 클라인(Namoi Klein)이 말한 대로 기후위기는 자본주의와 지구와의 전쟁이니까요. 즉, 석탄, 석유 같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산업 문명으로부터 좀 더 생태적 문명으로 변화하는 것인데, 전환이 어려운 건 결국 먹고사는 문제와 연관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자리는 현재 가장 큰 사회문제입니다. 팬데믹 이전에도 기술의 변화 속에서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니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성장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았어요. 팬데믹으로 불황이 심해지니 또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뉴딜 이야기가 나왔고요.

지금의 전환, 즉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은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에요. 오히려 환경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정치와 경제의 문제입니다. 특히 저는 경제 문제가 핵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명적 전환이 사회적경제와 연결된다고 보는 거죠.

경제 문제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요. 하나는 경제에 관한 우리의 인식 문제고, 또 하나는 경제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경제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자는 것은 글로벌 차원의 가치사슬을 통한 원거리 경제에서 벗어나 경제를 좀 더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결하자는 뜻입니다. 가까운 곳에서 안전한 먹거리와 안전한 일거리를 찾는 거죠.

경제 시스템의 문제는 지속가능성의 문제에요. 지금의 경제는 기후위기를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사회불평등과 구조적인 고용불안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고용 없는 성장이 과연 청년들에게 물려줄 대안일까요? 많은 이들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경제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답을 못 찾고 있어요. 그 답을 찾아 경제상을 바꾸는 것이 이 시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원채취-대량생산-폐기’로 이어지는 선형경제(liner economy)에서 자원 절약과 재활용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로 전환하는 게 그 대안이라고 봐요. 핵심은 글로벌이 아니라 로컬에서 작은 단위의 순환을 실천하는 겁니다. 모든 생태계의 진화 원리는 다양성 안에서의 적응이거든요. 적응이란 건 맥락과 상황 속에서 다르게 살아남는 것을 뜻해요. 다양한 것들이 생존력이 있는 건데 산업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획일화하고 공간적으로 복제하는 시스템이죠. 대표적인 게 농업의 모노컬쳐(monoculture, 대규모 단일재배)입니다.

이처럼 획일화된 지구 경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이제 다양성 속에서 모든 생명체의 폐기물, 즉 쓰레기가 다른 생명체의 식량이 되는 순환경제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그 안에서 사회적경제가 추구하는 가치를 지역사회에서 발현할 수 있다고 봐요. 사회적경제는 특히 에너지, 먹거리, 돌봄, 공유경제 같은 분야와 친화력이 높아서 실험적이지만 확장성이 대단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대안을 보여주며 주류경제에 맞서는 순환경제의 주체로 부상할 수 있을 겁니다.

 

이원재 LAB 2050 소장

이원재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에 “입은 많고 자원은 한정돼있다”라고 말하는 악당 타노스가 나와요. 우주에 인구가 너무 많기 때문에 모두 멸망할 위기에 놓였다고 생각하고, 우주 인구의 절반을 없애 나머지 절반을 살리겠다는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인구는 (억제되지 않을 경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맬세스(Thomas Robert Malthus)의 인구론과 같은 맥락이죠.

맬세스의 이론은 18세기에 나왔지만, 전 세계의 시스템을 운영하는 관점에서 학자들은 다 인구론에 입각한 걱정을 하더라고요. 케인즈(John Maynard Keynes)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평화의 경제적 결과(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에서 ‘독일에 높은 배상금을 물리면 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예측했는데, 그 글에는 인류의 식량 생산 체계가 매우 불안정하다고 나와 있어요. 유럽인들은 신대륙을 착취해서 근근이 먹고 사는데 인구는 안정적으로 늘고 있다는 거죠.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도 비슷한 관점을 갖고 있고요.

생각해보면 제가 학교에 다닐 땐 지구의 인구가 40억이 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했는데, 현재 인구가 80억이에요. 곧 100억이 될 테고요. 그 인구를 먹여 살렸다는 점에서 저는 자본주의가 굉장한 진보를 이뤄냈다고 봅니다. 처음엔 석탄으로 다음엔 석유로 자원을 써가면서, 복합경제에서 단일경제로, 소농에서 대농으로, 그 시대의 과학과 기술이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 80억 인구를 먹여 살리는 데까지 온 겁니다. 그 자체로 엄청난 진보일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이룬 진보도 있어요. 인권이 신장되었고, 민주주의가 정착되었고, 사실은 과거에 비해 평화로워졌죠. 물론 국지적인 평화이고,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도 있지만, 적어도 유럽 등 몇몇 대륙에서는 지속적인 평화가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인권, 민주주의, 평화는 분명 진보적인 성과로 봐야 할 텐데, 그렇다면 다음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저는 자본주의가 이룬 진보를 조금 후퇴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성과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면서 정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순환경제를 만들어가는 게 다음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경제뿐 아니라 순환경제를 지향하는 여러 활동이 진보적인 것을 지키면서 에너지 전환과 고용 없는 사회에 대한 대안을 함께 만들어가는 거죠.

 

정건화 한신대 교수

정건화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와 근대 산업 문명이 이룬 어마어마한 성과가 엄청난 진보를 가져왔는데, 이제는 그것이 오히려 전환의 최대 걸림돌이 된 거죠. 성과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만큼 그늘도 깊을 수 있는 거고, 그 시스템을 넘어선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성과가 없었다면 바꿔볼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사실 우리가 누리는 게 어마어마하잖아요? 문명적 전환보다는 이 시스템 안에서 해결하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전환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자연과의 관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관계에서 자본주의적 산업 문명이 갖는 일관된 성격이 있는데, 그것을 바꾸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연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산업 문명은 자연을 대상화해요. 인간은 자원을 가져올 수 있는 존재고, 그 자원으로 진보를 만들어낸다는 믿음이 있죠. 우리도 자연의 일부로서 생태계 순환 속에 인간의 경제 순환이 들어가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데, 인간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인간의 노동도 마찬가지잖아요? 노동과 삶의 의미부터 탈성장까지,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문제를 들여다보기 힘들죠. 우리는 뼛속까지 자본주의적 사고 속에 가치를 내재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것을 넘어서는 사고를 자본주의 사회 체제 안에서 가져가는 게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순조롭고 평화로운 전환이 가능할지 아니면 단절된 양상일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1972년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라는 책으로 출간된 로마클럽보고서2)에는 30년 후의 지구를 여러 시나리오로 예측했는데, 그중 가장 파괴적인 경로가 현상 유지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길을 50년 동안 걸어온 거예요. 시스템 다이내믹스 전문가들에 따르면 다양한 변숫값들을 넣어도 인류는 현재의 위기로 치닫는 경로를 바꿀 가능성이 거의 없게 나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희망이 없는 걸까요? 유일한 변화의 가능성은 ‘사람들이 지구 곳곳의 삶의 현장에서 만들어낸 저항을 연결하는 것’이라 해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전환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우리의 상황이 절망적이기도 하죠. 저는 사회적경제가 일종의 리트머스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경제라는 게 시민사회와 공동체 안에 녹아 들어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면 전환의 토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쉽진 않다고 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성장주의의 혜택을 엄청나게 입었어요. 저희 세대는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 하나로 성장한 경험을 했고, 그 성과를 누리고 있습니다. 성장에 대한 확신이 크고, 더 성장해야 한다는 욕망도 큽니다. 모든 걸 성장의 이름으로 희생할 용의가 있는 사회에서 여전히 살고 있기 때문에 성장주의를 넘어서는 가치를 찾을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어요. 그럼에도 우리나라 사회적경제가 그 대안의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요.

 

곽은경 GSEF 사무국장

곽은경

저는 전환에 대한 고민을 모든 국가에서 같은 방향으로 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아요. 팬데믹이 발생한 원인 분석도, 이후 나타난 변화에 대응하는 시스템에 대한 고민도 지역마다 국가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특히 사회적경제의 역할에 대한 고민은 편차가 크다고 봐요.

유럽연합(EU) 내에서도 오랜 역사적 전통 속에서 법과 제도가 탄탄하게 구축되면서 사회적경제가 주류로 자리 잡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벨기에 같은 국가에서는 지금 우리가 나누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반면, 스웨덴, 핀란드, 독일과 동유럽 등에서는 아직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 않아요.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특히 영국은 사회적경제기업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의가 다른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의 바람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논의는 거의 없었죠. 앞서 언급한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의 경우 전체 경제에서 사회적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10~15%에 달해요. 지역별로 보면 스페인에는 20%가 넘는 지역도 있고, 이탈리아에는 30%가 넘는 지역도 있죠.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제와 고용에서 사회적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나 낮습니다.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한 역할을 담당하며 수출을 통해 지속적인 혜택을 누려왔던 지금까지의 모델을 사회적경제 같은 모델로 전환한다? 상상조차 안 될 겁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마찬가지일 테고요.

그에 비해 아프리카 국가들은 노동력과 천연자원을 값싸게 착취당하며 이룬 경제성장 모델에서 다른 나라들이 겪은 산업화와 현대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급증하는 인구 문제와 청년실업, 도시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적경제에 주목하고 있어요.

이처럼 지역마다 편차도 크고 아직까진 모두가 대응하느라 바쁘지만, 저는 팬데믹으로 인해 불안해진 사회요인 속에서 사회적경제가 해낸 몫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공동체들, 하다못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조차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새로운 환경에서 사회적경제는 이미 형성된 신뢰 관계를 통해 가장 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돌봤습니다. 사회적경제기업들도 큰 피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꼭 필요한 이들에게 식량과 생활필수품, 의료서비스 등을 제공했죠. 아이들이 학교를 못 가는 상황에서 소외된 가정에 컴퓨터와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했고요.

OECD 연구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위기가 가장 심각했던 3월부터 5월까지, 고립된 지역사회에서 지방정부조차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던 시기에, 사회적경제조직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보를 교류하며 시민들의 자원봉사 역량을 조직화했다고 합니다. 위기의 순간에 가장 가깝고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된 거죠. 이런 모델에 대해 좀 더 많은 연구결과가 나오면 ‘문명적 전환 속에서 사회적경제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상상이 좀 더 구체화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은 위기 속에서 자신의 생존도 지켜내지 못하는 사회적경제가 문명적 전환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거죠.

1) 미국 스탠퍼드대 폴 에를리히 교수와 국립멕시코자치대 생태학연구소 제라르도 케발로스 박사 연구팀.

2) 1968년 서유럽의 지도급 인사들이 결성한 연구 기관인 로마클럽에서 세계의 인구 구조와 생태계의 변화에 대해 장기적으로 예측하고, 경제성장이 인구, 자원, 환경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

 

- 2부에서 계속

 

 

김푸르매 기자  gracia0420@s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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