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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를 잃은 공간의 쓰임을 다시 찾아, 지역과 도시를 연결합니다”『소소리연구소』 박성경 대표

서울 사는 청년들이 지역으로 내려갔다.
누군가에겐 그리운 고향이었고, 누군가에겐 낯선 타지였다.

지역을 떠나는 사람들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지역에 정착하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지역과 어우러져야 할까?
지역과 도시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며 이웃이 되어야 할까?

그리고 잊고 있던 지역의 가치는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 방법을 지역의 가치를 잃은 자원에서 찾았다.
누군가는 그 방법을 지역의 가치를 잃은 문화에서 찾았다.
누군가는 그 방법을 지역의 가치를 잃은 공간에서 찾았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방법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가치에서 찾았다.

경북 상주시 아천1리 마을(사진: 소소리 연구소 제공)

서울시와 각 지자체가 협력해 2019년 9월부터 진행한 〈넥스트로컬(NEXT LOCAL)〉 사업이 지난 4월 마무리되었다. 넥스트로컬은 지역의 자원을 연계·활용하거나, 지역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창업모델을 발굴하는 프로젝트다. 1기 사업을 마친 넥스트로컬은 현재 2020년 2기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다.

이번 호 특별기획에서는 넥스트로컬 1기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청년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지역의 미래를 담아 보았다.

 

넥스트로컬 2기
모집 대상: 서울시 거주청년(만19-39세)
활동 기간: 2020년 6월말부터 2021년 2월초
신청 기간: 2020. 5. 11(월) 09:00 ~ 2020. 6.7(일)
신청 방법: www.seoulnextlocal.co.kr 온라인 접수

 

1975년 개교해 2011년 문을 닫은 은척중학교 아산분교. 폐교로 방치되어 있던 이곳에 청년들이 모이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였다. 폐교에서 지내며 각자 사업을 하던 청년들은 주민들과 함께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이하 ‘청그협’)』을 만들었다. 청년들은 마을의 친환경 농산물을 가공·판매하고, 직접 유기농 농사를 지었다.

나지막한 2층짜리 건물에 10개의 교실. 청년들이 온 뒤로 학교의 풍경도 달라졌다. 잡초가 무성하던 폐교는 이제 때로는 주민들을 위한 영화관이, 때로는 노래자랑이 열리는 무대가 되었다. 교실 한 곳은 마을 목공방으로 바뀌었고, 1층엔 마을 카페가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해 가을부턴 또 다른 청년들이 학교를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전, 2층 교실 3곳이 수상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스탠딩 데스크와 짐볼 의자, 스핀 바이크와 요가 매트,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풍경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주식회사 소소리연구소(이하 ‘소소리’)』가 만든 코워킹 스페이스 「아천 무브먼트 랩」이다.

지금은 폐교가 된 은척중학교 아산분교

“작은 마을의 이야기에 귀 기울입니다.”

소소리연구소는 유휴공간 활성화를 통한 지역 재생을 연구하고 실행한다. 서울시 금천구에서 건축가의 서재 「로운쌀롱」을 운영하고 있으며, 경북 상주 이안면 아천1리 폐교를 기반으로 아천 무브먼트 랩을 조성하고 있다.

인구 140명, 주민 대부분이 고령인 작은 마을에 코워킹 스페이스를 만드는 이유는 뭘까?

“지역의 문제와 일하는 청년들의 어려움, 두 가지 고민이 맞닿아 있었어요. 우리가 가장 잘 다루는 것이 ‘공간’이다 보니까, 가치를 잃은 공간의 쓰임을 다시 찾아, 그 쓰임을 통해 지역의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공간을 만드는 건 뭘까?

‘소수정예’로 뭉친 건축가 선후배들

소소리 박성경 대표는 2016년 설립된 『소정당협동조합(이하 ‘소정당’)』의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건축을 공부하던 선후배들이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건축학을 전공하면 기술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춰 배워요. 공간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선 기술적인 게 중요하죠. 그런데 학교 다닐 때부터 기술만으로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공간을 처음에 어떻게 있게 하고 만들어 내는가’와 ‘그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유지하는가’는 우리가 배운 기술적인 부분만으로는 풀어낼 수 없으니까요.”

어린 소(小), 깊은 수(邃), 바른 정(正), 재능 예(藝), 무리 당(黨). 줄여서 소정당협동조합이다. 예전부터 농담처럼 던지던 ‘소수정예’란 말에 ‘감각을 바른 재주로 펼치는 청년들’이란 뜻을 담았다.

“건축 외연의 확장이 필요했던 선후배들이 모여서, 공간을 기획하는 것부터 그 공간을 실제로 만들어 내는 과정, 이후 공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까지 범위를 구분 짓지 않고 다양한 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역성’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소정당은 서울시 금천구를 기반으로 다양한 공간조성 프로젝트와 도시재생 사업을 수행했다. 주민들에게 무료로 공구를 빌려주는 ‘공구대여소’를 기획했고, 노후화된 저층 주거지 문제를 주민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마을관리소’를 운영했다. 도시재생 활성화를 위한 다목적 공유공간 ‘스튜디오 독산’ 등 지역의 공간을 설계하고 브랜딩 작업도 했다.

2018년에는 사회주택 시행사 아이부키가 금천구 독산동에 문을 연 「홍시주택」 1층에 로운쌀롱을 기획, 설계, 시공하고 운영까지 맡았다. 로운쌀롱은 사회주택 입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자, 예약제 대관 형식으로 외부인도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그동안 공공이 주도하는 사업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일하다가, 소정당이 기획부터 운영까지 전 과정을 맡은 건 로운쌀롱이 처음이었어요. 공공의 지원 없이도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부키와의 협업을 통해 첫발을 뗀 거죠.

그런데 금천구라는 지역에서 이런 방향으로 활동을 확장하자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공간을 기반으로 직접 활동하기에는 우선 임대료가 너무 비싸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돌아보는 워라밸의 의미

일하는 청년들을 위한 공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우리가 만들고 싶은 공간은 뭘까? 공간을 통해 추구하고 싶은 가치는 뭘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일하는 청년들’이란 단어에 이르렀다.

“우리도 당사자이다 보니 그들을 응원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요즘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이 사회적 화두잖아요? 그런데 전 번아웃 증후군에 대처하는 방법들이 썩 마음에 와닿지 않아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괜찮아, 지금까지 잘했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좀 쉬어” 하며 일에서 벗어나는 것. 누군가에겐 필요한 시간이고, 이 시간을 통해 재미있는 활동이 이뤄지는 것도 많이 봤지만, 저한테 필요한 건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또 하나는 물리적인 시간 배분을 통해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지키는 것. 일에 매몰되지 말고 삶의 균형을 찾자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럼 ‘일은 내 삶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거든요.

특히 도시에서는 일과 분리된 삶이 소비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요. 비싼 사무실을 임대해 일을 하고, 일터에서 나오면 헬스장에 등록해 운동을 하죠. 운동을 마치면 신선한 샐러드를 결제해 배달해 먹고, 주말에 볼 영화를 카드로 예매합니다. “워라밸”을 외치며 일에서 손을 뗀 순간부터 내가 골라 결제한 소비의 조각들로 내 삶의 시간표를 만들어나가는 게 저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럼 저 같은 사람들이 지쳤다면 그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요? 일을 하는 하루의 3분의 1을 삶과 분리해 무의미하게 만들기보다는 일 역시 삶의 소중한 영역이 되어 진정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응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일하는 공간 자체가 지속가능해야 하죠. 그 안에서 건강할 수 있어야 하고,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의 공간이어야 할까? 기존의 방식은 아닐 테고, 그렇다고 완벽한 새로움을 추구하는 실험실의 모습도 아닐 테고, 지난 1년 동안 협동조합 내적으로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그 공간이 꼭 서울이어야 할까?’ 하는 질문에 다다랐어요. 오히려 우리 삶의 패턴을 돌아보면 일하는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 중에는 서울이 아니었으면 마주치지 않았을 어려움도 많았던 것 같거든요.”

지역으로 눈을 돌리자 더 다양한 시도가 가능할 것 같았다. 참고할 만한 현장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갔고, 사단법인 씨즈의 ‘SEEKER:S(씨커스) 해외탐방’ 사업에 참여해 일본 오노미치, 카미야마, 도쿄의 사례도 둘러봤다.

은척중학교 아산분교 정경

 

우리가 찾던 지역의 발견! 가장 큰 매력은 사람!

“그러다 상주에 내려가 보니 ‘아! 우리가 찾던 곳이 바로 여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랫동안 고민하던 소정당의 그림은 넥스트로컬 1기 사업에 참여하면서 구체화되었다. 그런데 왜 하필 상주였을까? 유휴공간이 상주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박 대표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하나의 모델을 만들어 확장하고 복제해 프랜차이즈처럼 뻗어 나가는 식으로 지역에 접근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한 지역을 이해하는 건 매우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 같아요. 2016년부터 금천구에서 활동하며 고민했지만 2019년이 되어서야 “내가 생각하는 금천구는 이런 곳입니다”라고 겨우 말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으니까요. 새로운 지역에서도 금천구만큼의 아니 어쩌면 금천구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 것을 만들고 바로 떠날 게 아니라면, 지역에서 오랜 시간 함께 버텨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주는 넥스트로컬 운영사인 씨즈의 추천을 받아 내려갔다. 그곳엔 함께 발맞춰 지역에서 재미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었다. 지역에 첫걸음을 내딛는 소정당에게는 가장 큰 자원이었다. 무엇보다 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우리와는 조금 다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은 폐교를 기반으로 여러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협업농장과 친환경 농산물 유통판매를 통해 청년들이 지역에서 일하며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귀농 청년을 위한 플랫폼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아천1리 장동범 이장은 지역에서의 다양한 청년 활동을 반기며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있지만, 큰 틀에서의 목표는 아천1리를 농업 기반의 지속가능한 친환경 생태 마을로 만드는 것이었다.

같은 듯 다른 영역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좋은 파트너십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상주시 이안면 아천1리 마을

 

직원협동조합에서 사업자협동조합으로

소정당과 소소리의 동행

금천구를 기반으로 4년 동안 활동해온 소정당협동조합. 이제 터전을 상주로 옮겨야 하는 걸까? 늘 지역성을 강조하던 협동조합의 방향과는 맞지 않았다.

“고민 끝에 소정당은 여전히 서울시 금천구를 기반으로 공간을 다루는 다양한 작업을 하는 곳으로 남겨 두기로 했습니다. 대신 그 안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지역을 연구하고 관련 활동을 직접 수행하는 소소리연구소를 설립했어요.”

비슷한 시기 협동조합 안에 건축사 사무소와 디자인 하우스도 생겼다. 직원협동조합이었던 소정당은 이제 사업자협동조합 형태로 진화했다.

 

건강한 일터에 건강한 삶! 운동, 일, 명상을 한 곳에서!

아천 무브먼트 랩은 소소리연구소의 첫 번째 프로젝트다.

“건강하게 일하며 건강한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려 해요. 그 첫 번째 단계로 일을 하면서 운동과 명상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운동과 일을 함께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해외에는 이런 사례가 종종 있다.

“미국에선 co-working과 workout을 합성해 co-workingout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체육관과 일하는 공간을 물리적으로 결합한 사례가 많은데요. 전체 좌석이 스핀 바이크로 되어 있어서 자전거를 타면서 일을 해야 한다거나, 큰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클라이밍장에 책상을 갖다 놓고 일하는 중간중간 클라이밍을 한다거나, 다양한 사례가 있습니다. 신체를 움직이면 뇌가 더 활성화된다는 관점에서 테크니컬하게 접근한 경우가 많아요.

일본에도 재미있는 사례가 있더라고요. 공유사무실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데 50분에 한 번씩 강제적으로 운동을 합니다. 운동이 끝나면 자기 자리로 돌아가 일을 하죠. 트레이너가 상주하고 있어서 원한다면 따로 개인 트레이닝도 받을 수 있고요.

아천 무브먼트 랩은 기존처럼 앉아서만 일하는 게 아니라 신체를 움직이면서 일할 수 있는 요소를 갖춰놓은 공간이라고 보면 됩니다. 명상이나 스트레칭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고, 관련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어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며 일을 하는 게 우리의 첫 번째 목표입니다.”

일하며 운동하고 명상도 할 수 있는 아천 무브먼트 랩

 

일주일 살아보니 괜찮네?

마을에 정착하고픈 이들에게 ‘쉬운 선택지’ 주고 싶어

단순히 자전거를 타며 노트북을 하고 스탠딩 데스크에서 일하는 것만이 아천 무브먼트 랩의 목표는 아니다. 한발 더 나아가 아천1리에 소속된 공간에서 일을 함으로써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까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이 지역의 먹거리를 유통하고 판매하니까 마을에 공유주방을 만들어서 지역 먹거리로 만든 음식을 제공할 수 있을 겁니다.

또 마을에 예쁜 저수지가 있거든요. 근처에 단기 혹은 장기로 묵으면서 생활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같은 시설을 만들어도 좋을 거예요.

아천 무브먼트 랩을 방문한 사람들이 마을 전체를 경험할 수 있도록 마을 곳곳에서 다양한 공간을 되살리는 게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주요 고객은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IT 기술자나 디자이너처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프리랜서(개인)가 될 수도 있고, 집중도 있게 일해야 하는 프로젝트를 맡은 TF팀(기업, 단체)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개인이든 팀 단위든 일하는 사람들이 와서 건강하게 일하며 일주일, 한 달 정도 마을살이를 하는 거죠. 나아가 그 경험이 누군가에겐 마을에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역에 내려가 보면 마을에 유휴공간은 많은데 사용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아요. 든든한 지원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소리 역시 이곳에서 공간을 발굴해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요. ‘일주일 살아보니까 여기 괜찮네’ 하며 마을에 정착하고 싶어도 살 곳을 구하는 것부터 벽에 부딪힐 겁니다.

그런데 되살릴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하고 주민들과 함께하는 플랫폼을 만든다면 마을에 애정을 느낀 사람들이 공간을 바로 골라 정착할 수 있도록 보다 ‘쉬운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쉬운 선택지’를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청그협에서 폐교를 빌려 아천 무브먼트 랩을 조성하는 것과는 달리, 학교를 벗어나 유휴공간을 사용하는 것은 많은 협의와 이해가 필요한 일이다.

“코워킹 스페이스는 거의 다 완성되었는데, 다른 공간들은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우리가 모든 공간을 다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고요. 처음부터 결심했던 게 ‘소소리 거리를 만들지 말자’ 였거든요. 근처 빈집을 다른 회사가 사용해도 좋고, 우리가 생각 못 한 재미있는 공간이 생겨도 좋을 것 같아요.

중요한 건 다양한 주체들이 이용한 공간에서 발생한 소득이 마을로 돌아가는 거죠. 소소리의 가장 큰 고민도 유휴공간을 마을이 함께 소유하고 운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고요.”

상주시 이안면 아천1리 마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유쾌한 경험이 될 수 있을까?

하루 동안 둘러본 상주 이안면 아천1리. 일상을 벗어나 조용한 이곳에서 건강하게 일하는 아천 무브먼트 랩의 경험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도시에서의 삶에 너무나 익숙한 기자는 꽤나 유치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내가 원하는 걸 어디까지 구할 수 있을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원하는 걸 돈으로 어디까지 살 수 있을까? 상품뿐 아니라 예전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서비스까지, 거의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는 도시에 비해 불편함이 따를 것 같았다.

“같은 상주 지역이라고 해도 아천1리와 함창이 다르고, 함창과 상주 시내가 또 달라요. 문제는 말씀하신 것처럼 아천1리 마을로 들어갈수록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많아진다는 거죠. 마을에 가게가 하나도 없거든요.

여기서 두 가지 고민이 생깁니다. 첫째는 우리가 마을에서 만들어 내는 공간과 서비스로 돈으로 살 수 없는 무언가를 대신하는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둘째는 우리가 뭔가를 제공할 수 있다면 과연 그 경험이 유쾌한 방식으로 수용 가능할까?

이건 금천구에서 로운쌀롱을 운영하면서도 계속 던진 질문입니다. 우리는 로운쌀롱의 수익이 어떻게 하면 홍시주택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입주자들과 회의도 했고, 일요일 아침마다 시리얼을 차려주고, 화요일 저녁마다 영화를 볼 수 있게 공간을 열어줬죠. 하지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서비스를 돈을 내고 이용하는 데 훨씬 익숙하거든요.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서재가 있다고 해도 돈 내고 카페에 앉아 있는 게 훨씬 편한 거죠. 불 켜고 난방 켜고 함께 하는 공간에 들어와 정리하고 나가는 게 어색한 거예요.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많은 시골 마을에서 가치 있는 공간과 매력적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고심해야 하는 문제라고 봐요.”

 

비빌 언덕과 스피커

교류, 소통, 정착을 위해 필요한 건 것들

많은 이들이 ‘지역’을 말한다. 어떤 이는 사람들이 지역을 떠나 도시로 가는 걸 마음 아파하고, 어떤 이는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유휴공간을 활용해 도시 사람들에게 지역을 경험하게 하는 소소리는 지역과 도시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며 이웃이 되어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천1리에서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공간들은 사실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에요. 어쩌면 우리의 고객들은 마을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일 수도 있죠. 하지만 마을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을과 무관한 섬 하나를 만들 순 없는 거니까요.

그래서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이 소중한 파트너에요. 청그협은 이미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고, 앞으로도 마을 공동체 일원으로 함께할 수 있는 청년들을 모을 거예요. 청그협과 함께함으로써 소소리의 고민과 마을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거죠.”

박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지역을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받아들이는 자와 들어가려는 자, 어떤 관계 속에서 지역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

“귀농, 귀촌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더라고요. 주민들과 어울리지 않고 따로 살거나, 내려간 사람들끼리 완벽히 새로운 마을을 형성하거나. 기존 주민이 많은 마을에 단독으로 들어가서 적응하고 사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 우리는 정말 운이 좋았죠. 아천1리는 기존 주민들이 있던 곳에 이장님과 청년들이 들어가 아주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그 경험이 쌓이고 신뢰가 쌓여서 우리에겐 비빌 언덕이 되었고요. 이장님은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어떤 친구들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주민들에게 일일이 소개해 주었어요. 우리의 스피커가 되어준 겁니다. 사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일인데, 낯선 이들 앞에서 당사자가 직접 하긴 좀 어렵죠.

받아들이는 자와 들어가려는 자, 소통하고 교류하며 함께 지역을 만들어가야겠죠. 하지만 이제 막 지역에 들어간 이들이 마을과 어울리는 건 쉽지 않아요. 이건 받아들이는 자의 잘못도, 들어가려는 자의 잘못도 아니고요. 지역에 막 들어온 이들에겐 비빌 언덕이 필요하고, 스피커가 되어줄 수 있는 멘토가 필요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그들은 또 다른 이들의 비빌 언덕이, 스피커가 되어줄 거예요.”

 

사진 소소리연구소

김푸르매 기자  gracia0420@s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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