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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농촌에 정착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청년이그린협동조합』 새 식구 된 한재웅 씨

서울 사는 청년들이 지역으로 내려갔다.
누군가에겐 그리운 고향이었고, 누군가에겐 낯선 타지였다.

지역을 떠나는 사람들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지역에 정착하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지역과 어우러져야 할까?
지역과 도시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며 이웃이 되어야 할까?

그리고 잊고 있던 지역의 가치는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 방법을 지역의 가치를 잃은 자원에서 찾았다.
누군가는 그 방법을 지역의 가치를 잃은 문화에서 찾았다.
누군가는 그 방법을 지역의 가치를 잃은 공간에서 찾았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방법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가치에서 찾았다.

경북 상주시 아천1리 마을(사진: 소소리 연구소 제공)

서울시와 각 지자체가 협력해 2019년 9월부터 진행한 〈넥스트로컬(NEXT LOCAL)〉 사업이 지난 4월 마무리되었다. 넥스트로컬은 지역의 자원을 연계·활용하거나, 지역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창업모델을 발굴하는 프로젝트다. 1기 사업을 마친 넥스트로컬은 현재 2020년 2기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다.

이번 호 특별기획에서는 넥스트로컬 1기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청년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지역의 미래를 담아 보았다.

 

경북 상주시 이안면 아천1리, 지금은 폐교가 된 은척중학교 아산분교에 남자 셋, 여자 둘 청년들이 살고 있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이하 ‘청그협’)』 조합원들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20대 서울 청년 한재웅 씨는 지난해 10월 합류했다. 폐교 생활에 어려움은 없을까?

“불편한 점이오? 도시가스가 안 들어온다는 거? 형들이랑 누나들이랑 아직은 재밌어요.”

재웅 씨는 지난해 8월 넥스트로컬 사업설명회에서 청그협을 처음 알게 됐다. 지역민과 청년들이 협력하고 상생해 즐겁고 행복한 농촌, 지속가능한 농촌을 만들어나가는 곳. 그다음 날로 연락하고, 두 달 뒤인 10월에는 아예 짐 싸 들고 상주로 내려왔다.

 
지금은 폐교가 된 은척중학교 아산분교

 

귀촌인 출신 마을 이장, 청년에 주목하다

청년들은 어떻게 폐교에서 지내게 됐을까? 이야기의 시작에는 아천1리 장동범 이장이 있다. 서울이 고향인 그는 농촌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오랫동안 대기업을 다녔고, 매출 1,000억 원대의 반도체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다 7년 전쯤 건강 문제로 연고 하나 없는 이곳에 내려왔다. 창밖으로 너른 저수지가 보이고 주변엔 집 한 채 없었다. 마을과 별다른 교류 없이 지친 몸을 돌보며 2년 가까이 지냈다.

그러던 중 저수지에 수상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면 위에 설치해 경관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심각한 수질오염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주민들의 동의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주민들 대부분은 발전소 설치에 반대했지만 고령인 데다가 모내기 철까지 겹쳐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주민들을 대신해 다양한 관계기관과 업체 측을 만나 마을의 민원을 해결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과 소통하며 마을의 신뢰를 얻었다.

그 후 “마을에 있는 폐교에 주민들이 기피하는 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시설 측과 이야기해 이미 투입된 자금을 주고, 교육청에서 임대받은 폐교 은척중학교 아산분교를 인수하기로 했다. 폐교는 이제 동네 아이들의 공부방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은 장 씨는 귀촌 4년 만에 아천1리 이장을 맡게 됐다.

“이런 과정에서 마을에 필요한 건 뭘까, 지속가능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청년’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죠. 서울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힘들고 농촌은 청년이 없어 힘드니, 폐교를 이용해 지역에서의 청년 활동을 지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가지 구상이 떠올랐다. 가령 지역에서 청년들이 상주 함창 명주를 활용한 사회적기업을 만들면 어떨까? 뜻을 같이하는 조카와 함께 사회적기업 공부에 들어갔다. 그러다 사회적기업 설명회에서 청년들을 만나게 됐다. 농촌 사회적기업을 꿈꾸던 주슬기 씨와 그의 친구 백아름 씨였다.

아천1리 장동범 이장(왼쪽)과 한재웅 씨

 

농촌에서 길을 찾는 청년들, 협동조합으로 뭉치다

“농촌은 나이 들어 내려가는 곳이라 생각했어요.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해서 주얼리 세공 쪽에서 1년 정도 일했는데, 사회생활이 다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오랫동안 생을 살아갈 텐데 과연 이렇게 살면 즐거울까 고민했죠. 그러다 사회적기업 설명회에서 이장님을 만나 뵙고 폐교라는 공간을 알게 되었습니다. 폐교가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이곳에선 내가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들이 많을 것만 같았죠.”

주슬기 씨에 이어 두 번째로 내려온 청그협 백아름 대표의 이야기다.

하나, 둘씩 폐교에 모인 청년들은 처음에 각자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경험 없는 청년들이 소비 기반도 없는 곳에서 사업을 하자니 어려움이 많았다.

장 이장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함께 고민을 풀어보자고 제안했다. 협동조합의 사업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폐교를 기반으로 귀농 청년을 위한 플랫폼을 조성해 누구든지 지역에서 사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친환경 농사를 짓는 협업농장을 만들어 농촌을 살리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2017년 9월 귀촌한 청년들과 마을 주민들이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을 결성했다. 아산분교의 옛 교실은 협동조합 사무실이 되었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백아름 대표(오른쪽)와 한재웅 씨

 

청년이 살아가는 농촌, 청년이 그려가는 농촌

장 이장은 청그협이 추구하는 가치를 ‘농, 락, 청’ 세 단어로 요약했다.

“지속가능한 농촌, 즐겁고 행복한 농촌, 청년이 있는 농촌이에요.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지속가능한 농촌이라고 봅니다. ‘청년들이 농촌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와 함께 ‘청년들은 지속가능한 농촌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도 고민하고 있어요.”

2020년 3월 현재 청그협 조합원은 청년이 9명, 마을 주민이 2명, 총 11명이다. 청년 조합원 중 5명은 아산분교 관사에서 지내고 있고, 다른 조합원들은 마을 또는 다른 지역에 살고 있다.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지역의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가공, 판매한다. 둘째, 직접 협업농장을 운영하며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 판매한다. 셋째, 폐교를 활용해 카페, 공방, 기름 가공공장 등을 운영한다.

“처음 해보는 일이 많아서 힘들기도 해요. 아직 정식 판로가 형성된 건 아니라 지인들을 중심으로 고객을 확보하고, 지역의 농산물과 기름 같은 가공품을 판매합니다. 판매 기반을 갖춰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질 때도 있지만, 도시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마케팅을 하는 건 농촌과 어울리지 않고 청그협의 가치와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희 나름대로 진정성을 갖고 한 걸음씩 나아가려 해요.” (백아름 대표)

모든 활동은 다양한 협업 속에 이루어지고 있다. 한재웅 씨처럼 넥스트로컬을 통해 상주에 내려와 공간 사업을 하는 소소리연구소와는 폐교를 어떤 공간으로 만들어나갈지 함께 고민 중이고, 지역의 여성농민생산자협동조합 언니네텃밭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얼마 전 토지를 장기임대해 올해부터는 협업농장을 조성하고 고추, 쌀, 오이, 콩 등 본격적으로 농사도 짓는다고 했다. 협업농장의 목표는 쉽고, 비용이 들지 않고, 수확을 많이 할 수 있는 ‘친환경 농사’다.

 

청년 농부, 귀농 선배에게 유기농의 길을 묻다

“힘들죠. 서울에서 직장 다닐 때보다 더 바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뭐랄까, 도시와는 다른 바쁨이에요. 도시와는 다른 여유로움도 있고요. 이곳에선 바쁨 속에서도 스스로 일을 조율하며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있거든요. 물론 지금은 모든 게 처음이라 정신없지만요.”

상주 함창 덕통리의 오이 농가에서 만난 한재웅 씨. 지난해 11월부터 이곳에서 농사일을 배우고 있다. 재웅 씨의 멘토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동절기에도 유기농 오이를 생산하는 귀농 11년 차 농부 서정덕 씨다.

서 씨는 대덕연구단지 내 화학 관련 연구소에서 20년을 일한 화학 전문가였다. 하지만 계속되는 멀미 증상에 근육통까지 겹치는 등 건강이 악화되면서 2010년 귀농했다. 원인은 화학물질민감증이라는 희귀 알레르기 질환이었다.

“귀농 초기엔 관행농법으로 오이를 생산했어요. 그런데 농약을 사용할 때마다 몸이 너무 고통스러웠죠. 나 자신을 위해 약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농법으로 전환했고, 지금은 건강하게 유기농 오이를 생산합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동절기에도 유기농 오이를 생산하는 서정덕 농부(오른쪽)와 한재웅 씨

대한민국 농업의 수도라고 불리는 상주. 전국 생산량 10위 안에 들어가는 농산물이 10개도 넘는다. 그중 오이는 한우, 육계, 한돈, 곶감 등과 함께 전국 생산량 1~2위를 다투는 작물이다. 하지만 상주의 오이 농가 600여 곳 중 친환경 농사를 짓는 곳은 3곳뿐이다.

“오이는 기술집약적, 자본집약적, 노동집약적 작물입니다. 오이 농사 자체가 어려운데 친환경, 그것도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죠. 친환경 농산물은 유기농과 무농약으로 구분됩니다. 둘 다 농약은 쓰지 않아요. 단, 유기농 농산물은 화학비료조차 전혀 사용하지 않는 데 비해, 무농약 농산물은 화학비료를 관행농법 권장량의 3분의 1 이하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인증 심사 기준은 유기농이 더 까다롭죠. 이 어려운 걸 재웅 씨랑 청그협 친구들이 하겠다는 거예요.”

유기농 오이 농법만 전수하는 건 아니다. 귀농 선배로서 농촌의 현실과 귀농의 어려움, 농촌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

“귀농은 ‘사회적 이민’이라고 할 만큼 외롭고 힘든 일입니다. 청년들의 경우 이상이 중요해요. 내가 왜 시골에서 살아야 하는지, 어떤 꿈을 위해 이곳에 왔는지, 그 질문부터 던져봐야 합니다. 그 질문 없이 돈만 좇아 내려오면 견디기 힘들 거예요. 그다음에는 이상을 좇되 돈벌이에도 신경을 써야죠. 여기서 중요한 건 혼자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함께 버는 겁니다. 그래야 농촌에서의 삶이 지속가능하거든요.”

청년들을 볼 때마다 농산물 직거래 활성화와 마케팅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귀가 따갑도록 강조한다고 했다. 농산물을 일정하게 생산해서 공급하면 일정량이 꾸준히 소비되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거대 유통 플랫폼들이 공급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는 판로가 안정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농사만 열심히 짓는 시대는 지났어요. 소비자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상품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유통 플랫폼처럼 오이 2개를 배송할 순 없으니 다른 방식의 직거래 시스템을 고민해봐야겠죠. 가령 이웃 농가들과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를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고령화된 농촌에서 청년들의 역할을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요?”

서정덕 농부가 재배하는 유기농 오이

 

“멀리서 보면 꽃밭, 안으로 들어가니 비바람 치더라”

이곳에 내려온 지 어느덧 6개월, 초보 농부 재웅 씨의 귀농 소감이 궁금했다.

“도시보단 자기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잖아요? 그런 점이 좋아요.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여기서 생활할 수 있는 건 청그협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혼자선 내려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겁니다.

농촌은 멀리서 볼 땐 꽃밭이었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오니 꽃잎 사이로 비바람 몰아치는 벌판이었어요. 혼자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죠. 아마 귀농한 모든 도시 청년들이 똑같이 느낄 겁니다. 서울에선 앱 하나로 뚝딱 해결되는 집 구하기가 여기선 너무너무 어려워요. 어디서 자지? 뭘 먹고 살지? 이런 걸 생각하면 앞이 보이지 않죠. 단도직입적으로 집도 없고, 땅도 없고, 생활할 곳도 없고, 돈 벌 곳도 없고, 농사를 바로 지을 수도 없어요.

그런데 내려오기 전엔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귀농 관련 설명회에서도 모든 걸 다 지원해줄 것처럼 이야기했고요. 지원은 내려왔다고 무작정 해주는 게 아니에요. 정말 열심히 해야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열심히 할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을 만드는 게 너무나 어려워요.”

실제로 청년층의 농업 분야 진출을 촉진하는 정부 지원정책 중에는 농촌에 기반이 없는 청년들은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게 많다. 대표적인 게 청년농업인 육성정책이다. 만 18~39세, 경력 3년 이하의 청년 농부를 청년창업농으로 인정해 영농정착지원금을 연차별로 차등(1년 차 월 100만 원, 2년 차 월 90만 원, 3년 차 월 80만 원) 지급하는데, 본인 명의의 농지와 시설 등 영농기반을 마련하고 농업경영체를 등록해야만 신청할 수 있다. 정말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농업인의 자격을 엄격하게 조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농사를 짓고 있지만, 땅도 없고 시설도 없고 출하 실적도 없는 재웅 씨는 지원 대상이 아니다.

 

농업인 보조? 농업인 보상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서정덕 농부는 ‘농업인 보조’라는 개념부터 잘못되었다며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천편일률적인 지원정책이 농업의 진입장벽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농업인 보조라는 명칭부터 잘못된 거예요. 우리나라는 수출 일변도의 산업구조에서 농민들이 희생됐습니다. 농산물 가격 안정, 생태 환경 유지 등 농민들의 역할을 인정하고 정책도 보조가 아닌 보상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못 받을 수도 있는 건데 해주는 거야’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농민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정책이 펼쳐질 수밖에 없어요. 이런 현실에선 농업에 신규로 진입하려는 사람들이 각종 보조사업을 활용하기 어렵죠.

예를 들어 50% 보조사업으로 시설 하우스를 지을 경우 설치비 4억 원 중 2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자부담금 2억 원을 입증해야 합니다. 여기에 토지 확보를 위해 최소 2억 원이 필요해요. 결국 4억 원이 있어야 보조사업에 참여해 2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귀농을 꿈꾸는 청년들에겐 꿈같은 이야기죠.

영농자금도 마찬가지예요. 농사를 잘 짓고 있는 사람들은 실적이 있으니까 1%대 이자로 1억 원씩 융자를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기반이 없는 사람들은 1천만 원 빌리기도 힘들죠. 후계농이나 창업농에게 2%대 이자로 영농자금을 빌려주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아주 까다롭습니다. 예를 들어 2억 원을 융자받아 시설 하우스를 설치하겠다고 하면 토지가 있냐고 물어요. 토지가 없으면 토지부터 구하라고 하죠. 토지를 구하고 나면 시설 하우스는 무슨 돈으로 지을까요?

귀농 자금을 알아보다 보면 이런 구조적인 어려움에 부딪히게 됩니다. 기존 농민들도 겪는 어려움이지만 이제 막 농사를 시작하려는 이들에게는 아주 높은 진입장벽이 되겠죠. 정부의 지원만 기대하고 낭만적으로 귀농을 결정하면 실패하기 쉬워요.”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주슬기(왼쪽), 조성용 조합원이 친환경 비료 만들기를 실험하고 있다.

 

청년이 농촌에 정착하려면?

농촌에도 존재하는 자본의 논리

장동범 이장은 “농촌에도 자본의 논리가 존재한다”며 “아무것도 없는 청년들은 농촌에 정착하기 특히 어렵다”고 했다.

“우리 세대에서 귀촌한 사람들 중 70~80%는 아마 한적한 시골에 머무른다는 느낌으로 내려온 이들일 겁니다. 농촌에서 뚜렷한 수입이 없어도 경제력이 있으니 괜찮아요. 하지만 청년들이 농촌에서 살려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농촌에도 성공한 청년들이 있어요. 대부분 농촌이 터전인 청년들, ‘시골판 금수저’라 할 수 있는 청년들이죠. 이들은 보조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고 영농자금 융자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웅 씨 같은 청년들은 달라요. 내려와도 바로 농사를 짓기 어려울 뿐 아니라 기본적인 주거 문제조차 해결하기 어렵죠. 운이 좋아 “밥 주고 재워줄 테니 내 일 도우며 농사 배워라”는 인심 좋은 농부를 만난다 해도 토지 임대료며 시설 설치비며 몇억씩 필요한 농업 분야에서 어느 세월에 독립할 수 있을까요? 농촌에도 이미 자본의 논리는 들어와 있습니다.”

 

청년이 농촌에 정착하려면?

집 구하기, 땅 구하기부터 난관

귀농을 결심한 청년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어려움은 ‘집 구하기’다. 청그협 조합원들은 현재 지금은 폐교가 된 은척중학교 아산분교에서 지내고 있다. (사진: 소소리연구소)

청그협 백아름 대표는 “폐교가 없었다면 이곳에 내려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라 했다.

“농촌에 빈집은 많죠. 대부분 도시에 사는 자녀들 소유에요. 그런데 우선 관리가 어려워서인지 비워둘망정 잘 빌려주지 않아요. 그리고 살만한 집도 거의 없어요. 무너져내리기 직전인 집들도 많고요. 들어가서 살려면 몇천만 원을 들여 수리해야 할 겁니다.

귀농 관련 포럼이나 행사에 가보면 겨우 계약한 집을 수리하고 나니 집주인한테 쫓겨났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구한 집마다 부서져서 계속 옮겨 다녔다는 청년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요.”

지자체에서 ‘귀농의 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귀농 희망자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공급 자체도 많지 않고, 면 하나가 서울시의 3분의 1에 달할 만큼 넓은 농촌에서 귀농인들이 원하는 모든 지역에 귀농의 집을 조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농사지을 ‘땅 구하기’도 쉽지 않다. 사기도 어렵고 장기 임대는 더 어렵다.

“토지는 갖고 있을 때 가치가 오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잘 안 팔려고 해요. 시설 하우스를 짓는다고 하면 오랫동안 빌려줘야 하기 때문에 임대도 거의 안 해주고요. 귀농학교 가면 이런 부분을 강조합니다. 귀농지 선택하고 귀농 작물 선택하고, 내려가면 우선 1년 정도 멘토링 받으면서 신중히 나아가야지, 농지부터 구하려고 하면 구하기도 힘들 뿐더러 사기당할 수도 있다고요.” (서정덕 농부)

 

청년이 농촌에 정착하려면?

전국 곳곳에 ‘비빌 언덕’ 만들어야

고령화를 넘어 지역 소멸 위기까지 직면한 농촌. 청년들이 내려가면 두 팔 벌려 환영할 것만 같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청년이 농촌에 정착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장동범 이장은 “전국 곳곳에 청년들이 ‘비빌 언덕’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에 내려오자마자 스스로 농사를 짓고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귀농 청년들의 뜻에 동참하고 그들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정책적으로 갖춰야 합니다. 청년이 내려오면 자기 집에서 재우면서 농사를 가르쳐주는 멘토를 육성해야 하고, 청년들에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토지를 임대해야 합니다.

또 하나, 지금은 각자도생의 농사를 짓고 있어요. 옛날엔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농사를 지었지만 지금은 업자가 들어와서 합니다. 요즘엔 기계가 좋으니까 혼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죠. 그러지 말고 지역에 들어온 청년들을 묶어주는 겁니다. 가령 이안면에 내려온 청년들을 묶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거처도 마련해 주고, 같이 농사지을 땅도 빌려주고, 이들을 돌봐줄 수 있는 멘토도 육성하는 거죠. 그럼 농촌이 금방 살아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청년이 농촌에 정착하려면?

물질적 환경뿐 아니라 ‘가치의 공유’도 중요

협동조합이 없었다면 내려오지 못했을 거란 재웅 씨의 말을 뒤집어 보면, 어떤 청년도 혼자 내려와 혈혈단신으로 농사를 지을 순 없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장 이장은 “청그협이 귀농 청년의 플랫폼이 되려고 하는 이유는 혼자 귀농해서 살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청년들이 이곳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비빌 언덕이 되어 주는 게 청그협의 역할”이라고 했다.

‘비빌 언덕’이라는 게 단순히 물질적인 환경 조성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도시에 있다 보면 물질적인 것에 묻혀 사는 경우가 많잖아요?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익숙한 청년들에겐 이곳 생활이 힘들 수 있어요. 딱히 즐기지도 않았던 도시의 문화가 없다는 게 낯설게 느껴지고요. 그런 물질적인 것들이 정말 행복인지, 내 인생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함께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청그협에서는 1주일에 한 번씩 ‘사의학당’이라는 모임을 해요. 함께 고민도 나누고, 책도 읽고, 때론 사회적 현안을 두고 토론도 하면서 각자 진짜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거죠.” (장동범 이장)

오랜 시간 동안 각기 다른 길을 걷다가 은척중학교 아산분교에서 만난 청년들. 사의학당은 서로 다른 청년들을 조율하고 협동조합이 나아갈 방향을 점검하는 역할도 한다.

“다른 삶을 살던 사람들이 만났는데 같이 생활하다 보면 당연히 부딪히죠. 그래서 사의학당이 중요한 것 같아요. 서로 생각을 나누고 가치를 공유하다 보면 맞춰지거든요.

지역에 내려온 청년들이 단순히 먹고사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좀 비참할 것 같아요. 스스로 기반을 갖추고 마을과 상생하면서 지역과 생태와 공동의 선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면 우리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사의학당에서 이런 이야기도 많이 나눠요.” (백아름 대표)

 

아산분교 옛 교실에 붙어있는 프로젝트 1980 마인드맵

1980년대에서 마을의 미래를 보다

청그협은 이제 ‘프로젝트 1980’을 통해 아천1리의 새로운 내일을 그리고 있다.

“19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비가 오면 저수지에서 붕어와 새우가 논둑까지 올라왔대요. 그걸 잡아서 말려 먹었다는 마을 어르신들 말씀을 듣고, 그 시절로 생태를 복원할 수만 있다면 아천1리의 새로운 미래가 열릴 거란 생각을 했죠.” (장동범 이장)

프로젝트 1980의 핵심은 우선 20만 평에 달하는 저수지 물을 30~40년 전 특급수로 되돌리는 것이다. 수질 개선을 위한 노력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합성세재 대신 EM(Effective Micro-organisms, 유용한 미생물들)을 사용해 생활하수를 정화하는 것, 둘째는 비료, 농약,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농사를 짓는 것이다.

“2019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 마을에 선정되었어요. 현재 10년을 바라보고 프로젝트 1980을 추진 중인데, 청그협 청년들이 큰 역할을 할 겁니다.

물이 맑아지고 땅이 살아나면 동물, 식물, 곤충들도 많아질 테고, 그렇게 자연이 복원되면 이곳을 유기농 생태환경 마을로 만들 수 있겠죠. 그럼 생태 체험, 관광과 연계해 마을에선 농업 외 소득도 창출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마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면 우리가 생산한 유기농 농산물들은 마을의 핵심 콘텐츠로서 자연스럽게 판매할 수 있고요.” (장동범 이장)

프로젝트 1980의 핵심은 2만 평에 달하는 저수지의 수질을 1980년대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사진: 소소리연구소)

 

귀농 청년의 비빌 언덕을 스스로 만드는 청년들

우리는 지역에 들어오는 이들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아름다운 꽃밭이지만 홀로 맞서기엔 너무나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곳.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은 그런 농촌에서 청년들이 비빌 언덕을 청년 스스로, 그리고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다.

먼저 지역에 내려온 선배로서, 귀농의 꿈을 갖고 청그협의 문을 두드리려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을까? 백아름 대표는 “청그협이 추구하는 가치에 동의만 한다면 일단 환영”이라 했다.

“저희는 마을과 어울려야 귀농, 귀촌이라고 생각해요. 마을과 어울리지 않고 청년들끼리 모여서 지낸다면 제대로 된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당장은 즐겁더라도 마을과 불협화음이 생길 겁니다. 이곳에 정착해 오랫동안 즐겁게 살려면 마을 주민들과 교류하고 잘 어울려야 해요.

그런데 귀농한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 중 하나가 그 지역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거예요. 도시의 시각에서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일도 많지만, 지역마다, 농촌마다 나름의 질서가 존재하거든요. 그런데 자꾸 자기 기준에서 판단하니 마을과 멀어지게 되죠.

그런 면에서 저희는 운이 좋았어요. 이장님처럼 끌어주는 분이 계시고 서정덕 농부님처럼 가르쳐주는 분이 계셨으니까요. 농사지을 땅이며 귀농인의 집이며 필요한 것들이 있을 때마다 손발 걷고 도와주셨을 뿐 아니라, 마을에 저희를 소개하며 다리 역할을 해주셨죠.

비바람은 치지만 이곳은 저에게 아주 매력적인 꽃밭이에요.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일을 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여기 와서 가장 좋은 건 다양한 세대와 소통할 수 있다는 거예요. 도시에서는 제 또래밖에는 만날 일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곳에선 어르신들을 만나 다방면의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더 많은 청년들이 청그협의 문을 두드린다면 정말 좋죠. 저희는 귀농 청년의 플랫폼이 되려고 하니까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시골에는 일종의 텃세랄까, 배타성도 존재하잖아요? 저희 또한 이곳에 살다 보면 그런 면이 생길 거라고 봅니다. 협동조합 스스로 항상 주의하려고 해요. ‘지역에 들어오는 이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돌아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blog.naver.com/wnqordl2017

 

사진 김푸르매, 소소리연구소

 

 

김푸르매 기자  gracia0420@s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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