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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곳곳의 다른 면들을 문화 키트에 담아 알립니다”『그랬대』 김승연 대표

서울 사는 청년들이 지역으로 내려갔다.
누군가에겐 그리운 고향이었고, 누군가에겐 낯선 타지였다.

지역을 떠나는 사람들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지역에 정착하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지역과 어우러져야 할까?
지역과 도시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며 이웃이 되어야 할까?

그리고 잊고 있던 지역의 가치는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 방법을 지역의 가치를 잃은 자원에서 찾았다.
누군가는 그 방법을 지역의 가치를 잃은 문화에서 찾았다.
누군가는 그 방법을 지역의 가치를 잃은 공간에서 찾았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방법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가치에서 찾았다.

경북 상주시 아천1리 마을(사진: 소소리 연구소 제공)

서울시와 각 지자체가 협력해 2019년 9월부터 진행한 〈넥스트로컬(NEXT LOCAL)〉 사업이 지난 4월 마무리되었다. 넥스트로컬은 지역의 자원을 연계·활용하거나, 지역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창업모델을 발굴하는 프로젝트다. 1기 사업을 마친 넥스트로컬은 현재 2020년 2기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다.

이번 호 특별기획에서는 넥스트로컬 1기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청년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지역의 미래를 담아 보았다.

 

넥스트로컬 2기
모집 대상: 서울시 거주청년(만19-39세)
활동 기간: 2020년 6월말부터 2021년 2월초
신청 기간: 2020. 5. 11(월) 09:00 ~ 2020. 6.7(일)
신청 방법: www.seoulnextlocal.co.kr 온라인 접수

 

우리나라에서는 첫 옷은 태어나서 3일 만에 입었대.

지역마다 만드는 재료도 다르고, 부르는 이름도 달랐대.

배내옷, 배냇저고리, 깃저고리, 이레안옷.

‘이레’는 7일, 세 이레 동안 입힌다고 이레안옷이래.

 

아기가 태어나면, 7일째인 첫 이레, 두 이레, 세 이레, 때마다 특별한 의례를 치렀대.

첫 이레에는 삼신당을 차려놓고 

삼신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아기의 명을 비는 정성을 들였대.

이때 아기는 강보를 벗고 깃 없는 배내옷을 입었대.

 

배내옷은 무병장수하고 부귀공명한 조상이 입었던 저고리나 도포로

깃과 섶을 달지 않고 만들었대.

고름 대신 실끈을 길게 달아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했대.

상주 함창 명주로 만드는 배냇저고리 패키지

 

너른 들녘 덕분인지 예부터 상주는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불렸다. 쌀, 곶감, 누에고치가 유명한 곳. 그중 300년도 더 된 ‘상주 두곡리 뽕나무(천연기념물 제559호)’가 누에치기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듯 상주 함창은 신라 시대부터 명주 산지로 이름이 높았다.

요즘도 때마다 가을이면 함창엔 명주장이 선다. 함창엔 함창만의 짜임 기술이 있다. 당시 그대로, 좁은 폭을 유지해 자연스러운 투박함을 살려 천을 짠다. 하지만 중국산 명주가 들어오면서 누에고치 농가는 점점 줄어 지금은 몇 농가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명주실을 얻기 위해 누에를 치던 농가에선 이제 누에가루나 동충하초 같은 약용에 더 관심이 많다.

 

쌀, 곶감, 누에고치가 유명해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불리는 상주의 가을

 

이렇게 흔한 대나무가 서울에선 왜 쉽지 않았을까?

『그랬대』는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문화 키트 상품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경북 상주 함창의 명주로 만드는 배냇저고리 패키지와 경남 하동 악양의 대나무로 만드는 공예 키트를 제작하고 있다.

그랬대의 김승연 대표는 3개월의 순창살이가 지역살림을 이해하고 키트를 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패키지 개발을 전문으로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북적북적한 서울을 떠나 한적한 시골이나 소도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패키지 디자인을 하며 조용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텃밭도 가꾸고, 꽃도 키우고, 발효빵이랑 발효주도 만들어 먹고. 도시의 시스템을 벗어나 내 손으로 직접 좋아하는 걸 만들면서 나머지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순창에 내려갔고, 그곳에서 대나무 공예를 배웠어요. 댓살을 만들어 시골에 놀러 온 도시민들과 작은 바구니를 엮으면서 ‘서울 살 적엔 왜 이걸 몰랐지? 이렇게 흔한 대나무가 서울에선 왜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 못내 아쉬웠다. 돌아와 보니 그 흔한 대나무는 보이지 않았고, 대나무를 구한다 한들 제품을 제작할 공간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에서 넥스트로컬 모집 공고를 봤다. 순창에서의 즐거웠던 경험이 떠올랐다. 이색적이라 재미있고, 내가 만들어 내가 쓰니 애착이 생기는 대나무 공예. 어디서나 누구든 경험할 수 있도록 반제품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랬대 팀을 결성하고, 대나무 공예 키트 제작을 위해 지역 자원조사에 들어갔다. 김 대표가 선택한 지역은 지리산 자락의 맑은 정기가 머물고 섬진강이 휘돌아 가는 경남 하동군 악양면. 지리산 대나무는 단단하고 질겨서 찻잔받침 종류를 많이 만든다고 했다.

그러던 중 넥스트로컬 운영사인 사단법인 씨즈의 추천으로 상주 지역에 대해 알게 됐다. 농산물이 유명한 상주 지역에서 그랬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역 자원을 조사하다가 함창 명주의 매력에 푹 빠졌다. 대나무를 엮듯 명주를 경험하며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를 나누고 싶었다.

 

아기의 무병장수를 비는 마음

상주 함창 명주로 만드는 배냇저고리 패키지

“‘예전엔 아기가 태어나면 오래 살라고 장수한 남자 조상의 비단옷으로 아기 옷을 만들어 입히고 그랬대.’

그 의미를 담아 우리 명주로 배냇저고리를 제작하게 됐어요.”

김 대표가 얼마 전 직접 완성했다는 배냇저고리 패키지를 보여줬다. 사계절 모두 입을 수 있는 겹배냇저고리다. 앞섬에는 아기 이름이나 태어난 날짜 등을 직접 수놓을 수도 있다.

“원래 배냇저고리를 직접 만들어보는 반제품 패키지를 제작하려 했지만, 명주 손바느질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특히나 산모들은 작업을 하려면 손끝이 굉장히 아플 거예요. 그래서 자수로 구성을 바꿨습니다.”

배냇저고리 패키지에는 상주 함창 명주 이야기와 배냇저고리 이야기도 함께 담았다. 겨울용으로 누빔배냇저고리도 나온다. 누빔배냇저고리는 솜을 넣어 보내주면 직접 아기 옷을 누빌 수 있는 키트 제품과 전문가가 누빔까지 마친 완제품 중 선택할 수 있다.

가장 큰 고민은 국산 명주의 가격이다.

“좀 더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비용을 낮추고 싶은데, 누에고치 농가가 점점 줄다보니 국산 명주 자체가 귀한 몸이에요. 명주는 보통 한 번에 200kg 정도를 짜는데, 국산 명주는 두 해 치를 모아 짤 정도로 양이 많지 않아요. 요즘은 대부분 값싼 중국산 명주실을 쓰니까, 국내 명주 산업은 점점 더 쇠퇴하는 거죠.”

김 대표는 우리의 잃어가는 자원과 문화가 안타깝다고 했다. 그랬대는 현재 더 많은 사람들이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상주 함창 명주를 경험할 수 있도록 자투리 천으로 만든 액세서리 패키지 등 후속제품을 개발 중이다.

넥스트로컬 지역 자원조사 기간에 방문한 상주 허씨비단직물

 

여덟 가지 덕을 지닌 부채 이야기

하동 악양 대나무로 엮는 쓰임을 위한 공예

여덟 가지 덕을 지녀 ‘팔덕선(八德扇)’이라 했다. 첫째 시원한 바람을 내고, 둘째 모기나 파리를 쫓아 주고, 셋째 곡식이나 음식이 담긴 그릇을 덮고, 넷째 불을 지필 때 바람을 일으켜 불을 붙여주고, 다섯째 땅바닥에 앉을 때 깔고 앉고, 여섯째 길을 다닐 때 햇빛을 가리고, 일곱째 비를 막아주고, 여덟째 머리에 물건을 일 때 똬리 대신 사용된다.1)

“30~40년 전만해도 집 주변 대나무를 가지고 팔덕선을 만들어 여러 용도로 썼대요. 여름부터 부채로 쓰면 겨울쯤 돼서 어느덧 댓살이 하나 둘 빠지고, 그 쓰임이 다할 때가 되면 마지막엔 불쏘시개로 썼죠.”

찻잔받침과 팔덕선은 악양 대나무로 만든 그랬대의 첫 번째 공예 키트다. 팔덕선의 모태가 되는 편죽기법으로 대나무 짜임을 작게 작업하면 찻잔받침이 된다고 했다. 찻잔받침 키트에는 찻잔받침 샘플과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댓살, 그리고 섬진강변 대나무의 특성과 팔덕선의 의미, 악양 대나무공작소 이야기를 담은 짤막한 설명서가 담겨있다.

“명주도 마찬가지지만 가공되지 않은 생 대나무를 접할 일은 거의 없잖아요? 직접 만지며 댓살의 향과 감촉을 느끼는 경험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대나무는 탄성이 워낙 강해서 어떤 제품을 키트로 만들어야 할지 생각 많이 했어요. 혼자서 칼이나 가위를 이용해 마감 작업까지 하다보면 자칫 다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마감 없이, 도구 없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찻잔받침과 팔덕선 키트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작업은 지역의 창작공방 ‘대나무공작소’와 함께 하고 있다. 작가, 공방과 연계해 손으로 만들다 보니 유일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가장 어려운 점은 표준화다. 대나무는 멋대로 자란다. 마디도 길이도 제각각이다 보니 일정하게 맞추기가 어렵다. 지역 공방에서 만든 제품들은 공예품이라기에는 너무 거칠고 투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공예품에 대한 기대가 있잖아요? 정교하고 정갈하고 아름다운. 그런데 공방에서는 정말 실생활에서 쓰는 제품들을 만들어요. 제가 보기엔 뭔가 들쑥날쑥하고 가공도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것 같이 느껴지죠. 사실 선조들이 대나무로 뭔가를 만들었던 건 공예라기보다는 쓰임을 위한 일상적인 작업이었을 테고,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전통적인 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사업화를 하려면 예뻐야 하고 키트를 만들려면 표준화가 되어야 하니까, 그 안에서 밸런스를 어떻게 맞춰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동 악양 대나무로 만드는 팔덕선 키트

 

잊히는 전통이 아닌 일상다반사적인 문화로 이어가길

지역을 잇고 문화를 잇는 플랫폼 꿈 꿔

배냇저고리 패키지와 대나무 공예 키트는 우선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해 판매할 예정이다. 지역 작가들의 수작업으로 제작되는 만큼 구매수량을 파악해 소량 공급된다.

추후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어 지역 작가들을 위한 지속적인 판로를 구축하고 로컬 클래스를 열어 도농교류를 이어갈 계획이라 했다.

“악양 공방에서는 대나무 제품들을 만들어 구례장이나 플리마켓에서 팔아요. 공예품을 좀 더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판매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 안에 내가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키트 상품도 있고요.

그러다 범주를 좀 더 확장해 보았습니다. 대나무 공예나 배냇저고리, 그 외 우리의 공예품들 뿐 아니라, 이를 테면, 전 순창에서 발효를 배웠거든요. 장도 담고 술도 빚었는데, 거기서 ‘알콩메주’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15일만 숙성시키면 한 사람이 3개월은 먹을 수 있는 된장이 됩니다. 정말 획기적이잖아요? 플랫폼 안에 이런 것들도 담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죠.

나아가 플랫폼을 통해 지역에 놀러갈 수도 있고, 며칠 머물며 선생님께 공예를 배워볼 수도 있을 거예요.”

지리산 자락의 맑은 정기가 머물고 섬진강이 휘돌아 가는 경남 하동

 

서로 받치고 올리며 완성되는 대나무 공예처럼

지역과 같이 만들어가는 지역의 가치

약 6개월의 짧은 시간 동안 경북 상주와 경남 하동을 오가며 두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니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았다.

“지역을 알려면 적어도 그 지역에 몇 달은 있어야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방식이 적합한지 알 수 있을 텐데, 항상 시간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지역의 선생님들께서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로컬 비즈니스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특히 저희 일은 지역의 장인들과 공방의 선생님들과 함께 가야 하는 일이에요.

그런데 ‘가치’만을 생각하고 협업하다 보니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지역에선 ‘사업’이라기보다는 ‘일상’처럼 작업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시스템 안에 계신 분들이 아닌데, 저희와 함께 일하기 위해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셔야 하니 서류 작업 하나 하는 것도 힘든 거죠. 특히 넥스트로컬 같은 지원사업을 할 때에는 염두에 두어야 하는 사항 같아요.

그럼에도 전 지역의 가치는 지역과 같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주 명주를 통해 상주의 가치를 담으려면 상주 장인의 손길이 필요하고, 하동 대나무를 통해 하동의 가치를 담으려면 하동 장인의 손길이 필요해요.”

그랬대가 만들어 가는 지역의 가치는 서로 받치고 올리는 작업으로 완성되는 대나무 공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에서의 일자리와 삶자리를 도모하는 마을 사람들을 얹고, 지역의 건강한 창작품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들로 받치고, 지역에서의 작업을 지켜나가는 장인들을 얹고, 장인의 작품을 소개하는 작가들로 받쳐 잊히고 있는 문화를 일상다반사로 이어간다.

좁고 질긴 게 특징인 하동 대나무

 

상주 명주 다르고 경남 실크 다르고

우리나라 곳곳의 다른 면들 알리고 싶어

그랬대의 목표는 지역도, 전통도 많이 접해보지 못한 세대들에게 우리나라 곳곳의 다른 면들을 알리고 한국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논산 딸기, 청양 고추, 횡성 한우. 지역마다 유명한 특산물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지역 이름을 대면 딱 떠오르는 대표 주자들 외에도 지역의 자원은 많아요. 상주는 곶감으로 유명하지만 명주도 유명하죠.

그런가 하면 명주가 상주에만 있는 건 아니에요. 경남 진주도 실크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상주 함창 명주는 습식으로 짜기 때문에 조직이 아주 촘촘하고 견고해요. 이런 특징을 살려 배냇저고리를 만든 거죠. 그에 비해 진주 실크로는 얇은 스카프를 많이 만듭니다. 명주라고 다 같은 명주가 아니라 생산지에 따라 성질도 쓰임도 달라지는 거죠.

대나무도 마찬가지에요. 담양 대나무가 유명하지만, 대나무가 담양에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순창에도 있고, 지리산 자락에도 있고. 그 중 하동의 대나무는 좁고 질긴 게 특징이에요. 그래서 만들 수 있는 제품도, 공예품의 짜임 방식도 담양이나 순창의 대나무와는 달라져요.

이처럼 우리나라 곳곳의 다른 면들을 알리고 싶습니다. 각기 다른 지역을 담은 지역의 자원들은 각기 다른 문화를 간직하고 오랜 세월 우리 역사 속에서 함께 해왔으니까요.”

 

1) 참고: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사진 그랬대

 

 

김푸르매 기자  gracia0420@s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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