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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시각장애인에게 여행이란

 

한혜경 기자의 <문턱 없는 세상>은 청년으로서, 여성으로서, 시각장애인으로서, 무엇보다 한 인간으로서 기자가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담습니다. 그리고 문턱 없는 세상을 꿈꾸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걱정이 밀려왔다. 과연 내가 혼자 스페인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로마에서 환승은 잘 할 수 있을까? 기내식이 안 나오면 어떡하지? 할 일이 없으면 어떡하지?

공항에 2시간 먼저 도착해 공항 직원과 함께 비행기 게이트 앞쪽으로 이동했다. 공항의 꽃은 면세점이라고도 하지만, 면세점을 함께 둘러봐줄 사람은 없었다. 이번 여행에 있어서 가장 큰 아쉬움 중 하나였다. 

2시간 동안 노트북을 하며 기다리다가 가장 먼저 비행기에 올랐다. 아무도 없는 비행기에 홀로 앉아 있자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과연 장시간 비행을 잘 마칠 수 있을까? 또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 우려와는 달리 별 일 없이 로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행 중 승무원들은 화장실에 가고 싶지는 않은지, 음악을 듣고 싶지는 않은지 수차례 확인했고, 덕분에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로마에 내리자 한 남성이 환승 안내를 위해 비행기 문 앞까지 나와 있었다. 영어와 이탈리아어를 섞어 썼기에 나와 완벽한 언어 소통은 불가능했지만, 나는 그가 도와준 덕분에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잘 탑승할 수 있었다. 

마드리드로 출발하는 비행기에 또 가장 먼저 탑승했다. 이번엔 기장이 나와서 점자 비행기 가이드북을 보여줬다. 가이드북을 찬찬히 살펴보니 비상구 위치와 승무원 호출벨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고, 산소마스크 같은 구조장비 사용법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나아가 기장은 내가 직접 손으로 그 장치를 만져볼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런 면은 이번 여행에서 또 하나의 기억으로 깊게 남았다.   

마드리드 공항에서도 역시나 안내인이 나와 있었다. 그가 가방 찾는 것을 도와주고 공항 입구까지 친절히 안내해준 덕분에 나는 즐거운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앞서 마드리드로 향하던 비행기에서보다 훨씬 더 편안하게 왔다. 승무원들이 일하는 캐빈(cabin) 바로 앞에 자리를 마련해줘서, 필요할 때마다 뒤를 돌아보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캐빈 매니저는 수시로 와서 필요한 것이 없는지 확인했고, 승무원들은 통로를 오가다 한 번씩 웃으며 말을 걸었다. 단지 아쉬웠던 건 기내에서 파는 면세품 역시 구경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기내에 비치된 잡지도 살펴볼 수 없었다.   

한국에서 스페인으로, 스페인에서 한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오가는 동안 똑같이 느낀 불편함이 있다면? 음악까지는 부탁해서 들을 수 있었지만, 화면을 읽어주는 낭독 프로그램이 없어서 영화를 보는 등의 활동은 전혀 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여행의 설렘만큼 지루한 피로함이 함께하는 장거리 비행. 이런 부분이 개선된다면 시각장애인의 여행길은 더욱 윤택해지지 않을까? 또 하나, 그저 이동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은 아닌 만큼 면세점 안내 서비스도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장애인들의 여행에 안전함뿐 아니라 즐거움도 더 커지는 날이 오기를 살포시 기대해 본다. 


일러스트  박별라

한혜경 기자  koala@s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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