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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그 제품을 사용할지 모를 어떤 소수를 위해유니버셜 디자인 제품과 함께 하는 혜경이의 하루

한혜경 기자의 <문턱 없는 세상>
청년으로서, 여성으로서, 시각장애인으로서, 무엇보다 한 인간으로서
기자가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담습니다.
그리고 문턱 없는 세상을 꿈꾸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유니버셜 디자인 제품이란, 누구든 사용할 수 있도록 편리하게 디자인된 상품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손이 많이 가고 구상이 어렵지만, 최대 다수가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의미하기도 한다.

점자 라벨 메이커
시각장애가 있는 나의 하루 속에도 다양한 유니버셜 디자인 제품들이 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기 전까지의 일과를 돌아보면 놀라울 정도로 그 제품들은 나의 하루 속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루를 함께 돌아보며 유니버셜 디자인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아침에 일어나 점자로 ‘샴푸’가 새겨져 있는 미장센의 샴푸로 머리를 감고, 직접 점자라벨기로 제작하여 붙여둔 스킨로션 제품들을 사용해 스킨케어를 한다. 그러나 같은 모양의 용기가 아닐 경우, 굳이 점자를 부착하지 않고 모양을 통해 해당 상품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터치식 제품을 사용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어 버튼식으로 된 전자레인지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는데, 이때 식재품의 유통기한 역시 점자라벨기로 제작하여 붙여둔다. 냉장고를 정리할 때에는 유통기한이 빠른 것부터 앞세워 정리하기는 하지만, 식재품이 많아지면 유통기한을 일일이 다 기억할 수 없어 사용하는 방법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출시된 샴푸와 린스. 촉각으로 샴푸와 린스를 구분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거울이 없이도 편하게 책상 앞에 앉아 화장을 한다. 화장품에는 굳이 점자를 붙이지 않는다. 생긴 모양과 크기가 다 다르기 때문에 모든 것에 점자를 붙이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된다.

왠지 화장이 잘 된 것 같을 때, 셀카를 찍고 싶어지는 마음은 똑같다. 아이폰을 켜고 찍은 사진이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실행해 셀카를 남기고 집을 나선다. 아이폰에는 기본적으로 읽어주는 낭독기능인 보이스오버가 있어 대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은 아이폰을 애용한다. 사진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앱으로는 다양한 앱들이 출시되고 있는데, 아직까지 모든 불편을 해소할 만큼의 기능을 가진 앱은 출시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선 집밖은 언제나 소란스럽다. 안내견과 함께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간다. 들어오는 버스 번호를 안내해주는 방송이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내된 버스 번호 순대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늘 초조하다. 앱을 실행해 확인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많은 버스가 오가는 곳에 사는지라 별 효용을 느끼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버스가 도착하고 버스에 올라 안내견이 찾아준 자리에 앉는다. 모든 안내견이 자리를 찾아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와 동행하는 안내견은 자리를 찾아준다. 목적지에서 하차해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유도블록으로 연결되어 있는 개찰구에는 점자로 어느 방면의 지하철인지가 표시되어 있어 편리하다. 내가 탈 방향을 확인한 뒤, 점자로 어느 카드인지 새겨둔 카드를 꺼내어 개찰구에 찍고 들어간다.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화장품들은 점자 라벨을 붙여 구분한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플랫폼으로 내려가기 전, 난간에 새겨져 있는 점자를 확인해 상행선인지 하행선인지 구분한다. 플랫폼에 도착해서는 스크린도어의 좌/우측에 새겨진 점자를 확인해 올바른 탑승장에 도착하였는지 확인한다. 또, 게이트번호도 확인해 지인과 함께 만날 때면 그 위치를 알려줄 수도 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도 같은 방식으로 집에 도착한다. 집 앞에 도착하면 터치식 키패드의 비밀번호 기기가 아닌 버튼식의 비밀번호 기기를 통해 집에 들어온다.

침대에 누워 아이폰으로 알람을 설정하고 다시 또 다른 하루를 준비한다.

유니버셜 디자인 제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편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상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다른 한쪽에 새로운 불편함이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상지장애가 있어 손에 힘이 약한 사람에게는 분명 터치식 제품이 유용할 테지만,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버튼식 제품이어야만 제대로 된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에게는 유도블록이 불편하지만,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유도블록이 일종의 길잡이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사회 속에서, 어떻게 보면 
‘언제 그 제품을 사용할지 모를 어떤 소수를 위해’ 해당 제품에 점자를 표기하고 장애를 고려해 어떤 기능을 추가해둔다는 사실에 오늘도 문턱 없는 사회는 실현의 길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글 한혜경(본지 기자)  일러스트 박별라

한혜경 기자  koala@s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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