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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적 사회주의자의 반란『로버트 오언』

 

“ 나는 오언의 인생을 그런 방식으로 알아서들 이해하시라고 두지를 못하겠다."  G. D. H 콜
이 책은 사회로부터, 때로는 그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온갖 오해와 편견으로 
사장되어온  로버트 오언을 다시금 세상에 꺼내어 놓는 글이다. 

G. D. H. 콜 지음 │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 16,800원

책을 번역한 홍기빈은 이에 더해 ‘역자서문’에서 한창 회자되고 있는 시대적 키워드 ‘4차 산업혁명’과 ‘사회혁신’을 꺼내들며, 적극적으로 로버트 오언을 현대사회의 무대 위에 올린다. 추리소설 작가로도 이름을 날렸다는 콜은 어린 시절에서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시간순대로 로버트 오언의 일생을 풀어내는 가운데, 오언의 글들을 중간 중간 적재적소에 배치해 넣고, 당시의 사회, 정치, 문화, 역사적 배경을 풍부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책의 서두와 말미에 오언을 노망난 할아버지 시절이 아니라 수많은 업적을 남긴 청장년 시절의 모습으로 평가해줄 것을 재차 당부한다. 

로버트 오언.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이토록 그를 ‘다시 보아 달라’ 호소하는 걸까. 그가 온 인생을 바쳐서 외쳤다는 ‘메시지’는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걸까.

 

1~7장 ‘자애로운 오언 씨’가 되기까지

콜은 흥미롭게, 때로는 치밀하게 오언의 일생을 적어나간다. 책의 서두인 ‘1장 로버트 오언과 그의 시대’에서는 태어나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의 삶 전체를 당시 시대상과 결부하여 훑어보고, 그의 굵직한 업적과 사상, 운동을 맛보기 한다. 뒤이어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인 ‘종교’와의 만남에서부터 그에게 영향을 미친 다양한 ‘어린 시절’의 환경, ‘가게점원 오언’이 몸소 체험한 노동자의 삶과 전 방위적 훈련 그리고 종교를 버리게 된 이유까지 그의 유년기를 그려 나간다. 18세의 나이에 창업에 성공하고, 20살도 채 되지 않아 500명의 노동자를 거느리는 경영자가 되는 ‘성공신화’에 이어, 평생의 동반자를 만났던 ‘맨체스터-결혼’시기, ‘뉴 래너크 공장’과의 운명적인 만남, 그곳에서 일궈낸 감격스런 모습에 이르기까지 ‘자선가 오언 씨’였던 그의 눈부신 시절이 찬란하게 펼쳐진다. ‘7장 브랙스필드에서의 생활’에서는 사생활에 대한 기록을 통해 그의 교육관과 종교관을 보여주고, 교육문제에 대해 최초의 연설을 하는 등 공중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하는 오언을 보여준다.

 

8장 교육의 숨은 선구자

콜은 하나의 ‘장’을 할애하여 ‘교육에 대한 오언의 생각’을 다룬다. 오언주의의 기초는 ‘교육을 인격형성과 행복소유의 수단으로 보는’ 것이며 ‘인격형성이야말로 그의 사회적 교리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오언은 “인간의 성격은 그 사람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어떤 공동체에서든 일정한 수단들을 적용함으로써 사람의 인격을 어떤 모습으로든 만들어낼 수가 있다.”며 환경과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이것이 효과를 내려면 인격이 형성되는 영아기에 교육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성인교육 이상으로 영아교육, 아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간은 영아기부터 일정한 분파, 계급, 정당, 나라에 따라오는 특정한 생각을 수용하도록 강제당 해 왔기에 만사만물을 바라보는 시각은 왜곡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오언은 암기가 논리적 추론과 관찰, 놀이, 이해, 상상력의 자리를 차지하는 교육행태를 지양했고, 야외수업, 무용, 음악 등 책을 넘어 오감에 호소하는 교육을 장려했다. 오언의 목적은 항상 ‘선한 것들과 유쾌한 것들을 심리적으로 결합’시키고, ‘선한 정서와 생각에 친화적인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인류를 미덕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그는 “교육이야말로 이러한 목적의 견지를 가능하게하고 오류와 분쟁을 분쇄하며, 과학이 밝혀낸 생산적 힘들을 만인의 공동선을 위해 풀어내는 쪽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힘주어 주장했다. 

 

9~12장 ‘현실적 사회개혁가’를 집어치우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중반에 접어들면서 질적으로 다른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한다. 

1913년 처음으로 글을 출간하며 공중을 향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오언은 노동자 처우개선을 골자로 한 ‘최초의 공장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2년간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끝내 난도질당하고만 자신의 법 앞에서 희망을 버리고 돌아선다. 

1815년 종전 후 영국에 급속히 대두된 궁핍의 원인을 그는 놀라우리만큼 준비된 자세로 날카롭게 진단한다. 진단에 따라 의회 위원회에 ‘협동마을 건설’을 구빈법 개혁방안으로 제안하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자 대중 집회를 열어 자신의 계획을 목 놓아 외치기 시작한다. 

1817년 두 번째 대중 집회에서는 무엇 하나 이해받지 못하는 현실이 진저리난 듯, 조심스럽게 접근하던 방식을 벗어던진다. 종교의 오류와 종교적 불관용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사람들을 개인화 하는 것으로는 어떠한 해결책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의회개혁을 비판하는 한편 지방자치정부를 꺼내들고 ‘오언 씨의 계획’이 사회를 총체적으로 재조직할 보편적 계획이었음을 천명한다. 

1816년 뉴 래너크 공장에 새 학교를 설립하고 비로소 자신의 교육계획을 실현하려 하지만, 이 시도마저 동업자들과의 종교교육 및 교육방식에 대한 이견에 부딪혀 좌초되자, 1828년 오언은 뉴 래너크를 완전히 떠나보낸다. 

현실에 이해받기를 포기한 오언은 현실(감각)을 익히려 애쓰지 않게 되고, 이때부터 귀를 닫고 일방적으로 알고 있는 정답을 우매한 대중들에게 전파하는 ‘말세의 예언가’가 되어간다. 

‘피터루 시절’ 정부의 억압적 공포정치에 놀랍도록 무신경한 그의 태도는 ‘계획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시행되는 것일 뿐, 그들 스스로가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오언의 입장을 명확히 보여준다.

 

13~18장 사회주의운동의 개척자에서 몽상가로 사라지기까지

콜은 사회(주의)시스템에 대한 신앙으로서의 오언주의가 처음으로 천명된 「래너크주에 제출하는 보고서」를 소개하며 ‘13장 오언주의 운동이 시작되다’의 포문을 연다. 이 장에는 수많은 이론들의 맹아가 되는 말들이 개진되어있다. 

뒤이어 1831년 아내와의 사별을 언급하며, 공인이 되던 그 순간부터 ‘인류에 이익을 미치겠다.’는 생각이 지나쳐 모든 사생활을 버리고 자신의 세계를 더더욱 추운 곳으로 만들어가는 오언의 일생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다. 

오언은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하모니’ 공동체 실험을 시도하지만, 제각각의 이론을 가진 이상주의자들로 구성된 작은 공동체는 이내 분열로 점철되어, 개인으로 찢어지고 만다. 오언은 ‘사전적인 도덕적 훈련이 선행되지 않는 한 인간은 공동체 생활에 적응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는다. 

미국에 가있는 동안 오언의 학설은 ‘노동계급의 복음’이 되었다. 오언은 제멋대로 성장한 ‘오언주의 사회주의’와 ‘협동조합’의 위시 아래 노동계급·노동조합운동의 지도자가 되어 ‘전국 노동조합 대연맹’을 결성하고 ‘전체 노동계급 총파업’을 꾀하는 등 이를 사회주의의 도구로 사용해보려 하지만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실패하지 않기 위해 오언은 일순간 ‘위기’는 끝난 것으로, ‘대연맹’은 필요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그는 “위기는 끝났고 급속하고도 거대한 도덕혁명이 일어나 <새로운 도덕적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 주장했다. 이때부터 오언주의자들은 사회주의나 경제적 변화 따위에는 관심을 끊고 ‘합리주의 교회들’을 세워 윤리적 세속주의를 설교하는 하나의 ‘교파’로 발전한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퀸우드 공동체를 세웠으나, 총재가 된 오언이 재정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물 쓰듯 돈을 써대는 바람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공동체의 설교도, 합리주의 협회도, 조직적 대중운동으로서의 오언주의도 퀸우드 공동체와 함께 사멸하고 만다. 

1853년 82세에 달한 오언은 심령술 신봉자로 변했으나 죽는 그 순간까지 쉬지 않고 행동을 계속한다. 왕과 장관들에게 연설문을 보내고 각종 회의를 개최하고 1857년 두 권의 자서전을 출간한다. 자신의 고향 뉴타운에서 공중집회를 계획하고 도시교육을 재조직하려던 그는 1858년 87세의 나이에 조용하고 부드럽게 세상을 떠난다.

 

사회주의의 반대말은 자본주의? 

산업혁명의 한 가운데에서 동시대인들 중 누구도 혁명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지만, 오언, 생시몽과 같은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무언가 엄청난 것이 벌어지고 말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기계제 생산의 도래가 인간의 자유와 도덕을 심히 침해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을 실업과 불평등 상태로까지 밀어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그들은 이 엄청난 산업변화에 걸맞게, 당시의 사회를 ‘산업의 합리성과 인간의 자유 및 연대라는 도덕적 가치가 최대한 공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재구성 해야할 필요를 느꼈다. 이에 우리의 생각을 왜곡시키는 일체의 (조직종교와 같은) 비생산적·비합리적 요소들을 사회에서 청산하기를 호소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원자화된 개인으로서 이기적 이익을 추구하며 무한 경쟁을 벌이는 방식의 (산업)사회 조직방법을 지양하고, 개인의 차원이 아닌 공동체라는 전체사회의 관점에서 자유와 연대가 공존할 수 있는 합리적 구성을 계획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사회주의란 개인주의, 무한경쟁의 비인간적 시장경제(그런 식의 사회 조직방법)의 반대말로서 나타난 이름이었다. 그리고 오언의 ‘사회주의’는 산업혁명에 발맞추어, 산업혁명 이후에도 인간이 자유와 도덕, 효율성을 추구할 수 있도록, 사회를 공동체라는 전체사회의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재구성(혁신)해보자는 의미에서 등장한 것이었다. 

 

사회는 기술을 ‘인간답게’ 담을 수 있는가 

사회를 재구성하는 원리로 오언이 제시한 것은 ‘협동’이었다. 오언은 ‘인간의 본성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이므로,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 ‘모두가 모두의 살림살이를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힘을 모으는 협동의 원리를 발현할 기회’를 얻는다면 그러한 사회와 산업사회의 조직이 ‘도덕적·효율적으로 시장자본주의 산업사회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개개인이 ‘협동할 수 있는 사회적 본성’을 제대로 발현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혁신적인 노력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오늘날 오언을 창시자 혹은 영감의 아버지로 내걸고 있는 갖가지 운동들, 노동조합 운동, 산업 합리화 운동, 아동교육 운동, 공동체 운동, 협동조합 운동, 세속적 합리주의 운동, 사회주의 운동 그 모두가 ‘인간이 다시 사회적 존재로서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또 그들의 협동을 통해 사회적 관계가 복원되고 강화되는 선순환으로의 전환’을 위한 그의 수많은 실천이자 실험, 혁신의 발로였던 것이다. 

200년 전 그들처럼, 4차 산업혁명의 한 가운데에 놓여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에게 오언은 말한다. 

“기술 그 자체를 불안과 공포의 대상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 

우리가 염려해야할 것은 우리 사회가 그러한 기술을 ‘인간답게’ 담을 수 있는 사회인지의 여부다. 

 

오직 단 하나의 생각만을 가진 사람

오언은 너무나도 뚜렷한 결점을 가진 사람이었다. 콜은 이를 매섭게 짚어낸다. 

“오언은 오직 단 하나의 생각만을 가진 사람이었다. 자신의 생각 속에서... 그 생각을 위해 살았던 그는... 그 생각에다가 너무 많은 무게를 실어 너무나 진을 뺀 나머지 마침내 그 생각 자체마저 망가뜨려버렸다... 급기야 그 ‘사람’까지 망가뜨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협동을 말하는 오언은 협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종교의 왜곡에서는 벗어났을지언정 자신의 생각의 틀에서는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그리고 현실에 이해받기를 포기하고 현실감각을 놓아버린 그 순간부터 오언은 갈수록 성급해진다. 

그러나 ‘지나치게 확신하는 그의 태도’에도 이로운 점이 있었다.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동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오언은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계획을 의심하지 않았고,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때문에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이를 직접 실천했다. 최선의 길이 막히면 차선의 길을 택했고, 더 이상 남은 길이 없으면 두 길을 붙여도 보고, 새 길을 만들어도 보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계획을 시도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운동에 흔적을 남기고 의도치 않은 수많은 조류를 창조해냈다. 

‘너무나 뚜렷한 결점을 가졌지만, 또 너무나 뚜렷한 여러 미덕을 갖춘 소금 같은 이.’

콜이 말하는 오언, 우리가 기억해야할 오언이다. 

안아름 기자  sulgaiguri@s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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