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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을 위한 ‘호밀밭, 놀며 일하는 ‘무브노드’폐광도시에 무브노드 오픈한 『널티』 김신애 대표
산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마을.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나지막한 살림집에 한 청년이 이사를 왔다. ‘태백의 선배’라 불리는 그는 술을 좋아하고, 미스터리를 좋아하고, 보드게임 모으는 것이 취미라 했다. ‘조용히’, ‘느리게’ 살고 싶어 이곳에 왔다는데, 현관문은 항상 열려 있고,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선배의 집을 찾은 청년들은 보드게임을 하다가 산책을 나갔고, 열심히 노트북을 두들기다가 별을 보며 술을 마셨다. 그런데 막상 선배가 보이질 않는다. 새벽 무렵 집 앞에 쌓인 눈을 쓸던 선배의 뒷모습을 봤다는 소문만 무성할 따름이다.

 

놀며 일하는 공간, 꼭 서울일 필요는 없잖아?

지난 2월 강원도 태백 마을에 청년과 여행자들을 위한 복합문화 협업공간이 문을 열었다. 일명 ‘놀며 일하는 공간 『무브노드(Move.Node)』’다. 

“태백에요? 태백에 청년들이 많나요?”

무브노드를 오픈한 『널티(NULL-TEA)』 김신애 대표에게 기자는 참으로 바보 같은 첫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아니요. 없어요. 그래서 디지털 노마드들이 와야 하는 거죠.”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업무에 필요한 기기들만 있다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들. 하루는 해변에서 일하다 서핑을 즐기고, 하루는 시골마을에서 일하다 숲을 거닐고, 하루는 로마의 콜로세움 근처에서 관광객들을 바라보며 일하는 사람들. ‘부럽다!’를 외치다가도 많은 이들은 꿈같은 이야기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만다. 

하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서 디지털 노마드를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집 앞 카페에만 가도 많은 이들이 잔잔한 재즈와 옆 테이블의 대화소리를 배경삼아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으니 말이다.  

게임개발자인 김 대표가 어떻게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공간을 열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전 원래 여행을 별로 안 좋아해요. 푹 자고 일어나, 한 곳에 앉아서 작업하는 걸 좋아하죠. 그런데 2017년 초, 「제주다움」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삶의 방식이 뭔가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제주다움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의 체류지원 프로그램으로 스타트업과 문화예술인들이 한 달 동안 제주에서 살 수 있도록 숙소와 작업실을 제공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모르는 동네에서 멍하니 앉아 있고 흥얼거리며 거닐다 보니, 잊고 있었던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어요. ‘내가 살아있는 게 맞구나.’ 싶었고, 행복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지요. 또, 그곳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용기와 위안을 얻을 수 있었어요.”

서울로 돌아와 바쁜 일상을 보내던 김 대표는 오랜만에 들른 고향 태백에서 문득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했다. 

‘가족과 어린 시절 추억이 살고 있는 이곳에서 왜 나는 여유롭게 살아갈 수 없을까?’

무브노드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노트북만 있으면 일할 수 있는데 꼭 서울이어야 할까? 만약 태백에 여행하면서 일할 수 있는 협업 공간이 있다면? 그 공간에서 다양한 창작자들을 만날 수 있다면? 숲도 있고 계곡도 있고 시커먼 폐광도 있는 이곳에서 꽤 즐겁게 일하며 매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마침 강원랜드 희망재단에서 「2017 폐광지역 사회적경제지원사업 창업아이디어 공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김 대표가 일하는 널티가 제안한 협업공간은 창업지원사업으로 최종 선정되었고, 이후 「2017 강원 폐광 지역 공간재생 창업 공모」를 통해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와도 함께 일할 기회를 잡았다.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무브노드를 현실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주다움의 인연으로 무브노드를 함께 만들어갈 공간 디자이너도 만났다. 게임 만드는 『널티(NULL-TEA)』와 디자인 스튜디오 『메타플랜(METAPLAN)』이 손을 잡으며 새로운 실험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고, 2018년 2월 24일, 무브노드가 가오픈했다. 무료 베타테스트로 운영되던 무브노드는 지난 6월 유료 멤버십 형태로 전환했다.

 

잊히고 쓸모없어진 기억들, 게임에 담다 

널티는 사회공헌게임을 개발하는 소셜벤처다. 예술단체에서 놀이 디자인을 하던 김 대표는 2015년, 대안학교와 청소년지원센터 등에서 위기청소년들을 만났고, 그 아이들에게 게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거칠었던 한 아이가 게임 만들기 수업을 통해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짤막한 수업이 끝났고, 김 대표는 고민에 빠졌다. 아이가 이제 막 꿈을 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꿈에 응답하고 싶었다. 그래서 게임창작집단 『널티(NULL-TEA)』를 만들었다. 

널(null)값은 프로그래밍 코드 중 하나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을 값. 그게 널값이다. 이 널값을 차(tea)처럼 우려서 가치 있는 것을 만들면 어떨까? 널티가 추구하는 목표였다. 널티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아이의 삶을 게임에 담는 것.’ 그 동안 잊고 살았던 자신의 가치를 게임을 통해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잊히고 쓸모없어진 마을, 청년을 담다

강원도 태백에 들어선 무브노드는 위기청소년들과 게임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널티와도 묘하게 닮았다.

“어릴 땐 몰랐는데 태백은 참 서글픈 도시예요. 과거에는 열심히 일한 광부들이 국가의 동력이었는데, 이제는 쓸모없어 버려진 도시가 된 거잖아요. ‘폐광도시’하면 카지노처럼 안 좋은 이미지만 떠오르고. 물론 고향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태백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위기청소년들의 방황은 대부분 어른들의 잘못 때문이지 그들의 탓이 아니다. 폐광도시의 쇠퇴 역시 산업구조의 변화 때문이지 도시와 주민의 탓이 결코 아니다.

청소년기에 방황한 이들도 활동을 하며 사회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리고 일반적인 속도에 맞추어 사회로 들어올 수 없는 이들을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널티 같은 사회적 기업이다.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공간이라고 하면 ‘자유로운 영혼’이란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한편으로 이곳은 서울이란 포화된 시장 안에서 경쟁하다 지친 이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해요. 저 같은 사람들도 돌아올 곳이 필요하잖아요? 잠시 쉬어갈 곳도 필요하고요.

공간디자이너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태백의 선배’라는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지친 이들이 언제나 드나들 수 있는 곳. 한껏 힐링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갈 수 있는 곳. 일과 놀이와 휴식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곳. 그리고 훌쩍 떠났다가 언제라도 다시 올 수 있는 곳.”

move의 사전적 의미에는 ‘① (몸 등을) 움직이다. 움직이게 하다. 옮기다 ② 바뀌다. 달라지다.’ 등이 있고, node의 사전적 의미에는 ‘① (나무줄기의) 마디 ② (뿌리·가지의) 옹이 ③ (연결망의) 교점’ 등이 있다1). 김 대표는 두 단어를 조합한 MOVE.NODE가 ‘움직이다가 만나는 곳’을 의미한다고 했다.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듯 다르지만, 서로 만나 공감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관점이 돋아나는 삶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현대인을 위한 호밀밭: 놀며 일하는 무브노드

위기청소년들과 게임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김 대표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올렸다고 했다.

“제가 그 친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아무것도 없을 거예요. 저는 그저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세상이라는 절벽에서 뛰어다녀야 하는 친구들을 지켜보고 싶었어요. 할 수만 있다면 호밀밭의 잡초라도 베면서...”

“아무튼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것을 항상 눈에 그려본단 말이야. 몇 천 명의 어린애들만이 있을 뿐 주위에는 어른이라곤 나밖에 아무도 없어. 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 주는 거지.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 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지.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어. 그러나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런 거야.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지만 말이야.”
J. D 샐린저『호밀밭의 파수꾼』中 2)

디지털노마드를 위한 공간이라지만 무브노드는 태백에 사는 청년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태백에서 나고 자랐지만 갈 곳이 없어 고향을 떠나려는 젊은이들 그리고 경찰, 공무원, 교사 등이 되어 타지에서 태백을 찾았지만 여전히 이 도시가 낯선 젊은이들. 김 대표는 이들 모두 태백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무브노드의 또 다른 역할이라 했다. 

디지털 장비로 무장을 했든 안 했든, 고향에 머무르든 타지로 떠났든 우리 모두는 세상을 떠도는 노마드(nomad, 유목민)임이 분명하다. 무브노드가 현대인이라는 노마드에게 오아시스 같은 접점이 되기를 기대하며, 김 대표가 그린 태백의 선배는 어쩌면 삶에 지친 현대인이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NULL-TEA
null-tea.com

 

 

 

 

Move.Node
강원도 태백시 하장성1길 4 
070-4708-3000
movenode.com
facebook.com/movenode

 

 

1) 참고: 옥스퍼드 영한사전
2) 번역문 참고: 소담출판사, 김재천 역

 

사진 무브노브

 

김푸르매 기자  gracia0420@s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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